7권 1책의 목판본으로, 서문이나 발문 없이 끝장에 “신묘년(1651) 겨울에 공산(公山)에서 처음으로 간행하다.”라고 되어 있다.
『속청구풍아』의 판본은 현재 두 종류가 전한다. 서울대학교 규장각에 소장된 11행 20자본은 간기(刊記)와 『탐라지』(1653년)의 기록을 근거로 1651년에 공주에서 간행되었음을 알 수 있다. 경상대학교 문천각에 소장된 11행 24자본은 11행 20자본의 여러 오각들을 수정하고 있는 완성도 높은 후대 본으로 1675년에 간행되었다.
성종 때에 김종직(金宗直)이 편찬한 『청구풍아(靑丘風雅)』를 속선한 것으로 우리나라 명시를 모아 비평과 주석을 곁들였다. 『속동문선』(1518년)이후 조선 시선집이 거의 보급되지 않아 이 책이 1651년, 1675년 두 차례 간행된 것으로 보인다.
세조 때부터 선조 때에 걸친 여러 시인들의 시작품을 각 체별로 선별하여 수록해 놓고 있다. 권1은 오언 절구로 김정(金淨)의 「가월(佳月)」 등 16인의 시 19수, 권2는 칠언 절구로 강혼(姜渾) · 신용개(申用漑) 등 61인의 시 175수를 실었다.
권3은 오언 율시로 김안국(金安國)의 「차성진사이우운(次成進士移寓韻)」 등 39인의 시 112수를, 권4는 오언 배율로 정사룡(鄭士龍)의 「요지곡연(瑤池曲宴)」과 임억령(林億齡)의 「제을묘세병연계축(題乙卯洗兵宴契軸)」 등 4인의 시 5수를 실었다.
권5는 칠언 율시로 강혼 등 52인의 시 204수, 권6은 오언 고시(五言古詩)로 김안국의 「비재추지기(斐哉秋之氣)」 등 13인의 시 20수, 권7에는 칠언 고시로 홍유손(洪裕孫)의 「입추자도(入楸子島)」 등 20인의 시 27수를 각각 엮어 놓았다.
『속청구풍아』에 대해 남용익(南龍翼)은 취한 바가 명확하지 못하다고 『호곡집(壺谷集)』「기아서(箕雅序)」에서 비판하였고, 홍만종(洪萬宗)은 『시화총림(詩話叢林)』 「증정(證正)」에서 시의 선택 기준이 명확하지 못하고 요령을 얻지 못하였다고 평했다.
이는 이 책이 사실상 『청구풍아』를 속보할 만한 수준에는 미치지 못하고 있음을 말해 주고 있는 것이다. 수록된 인물이 편찬자의 바로 앞 시대 인물로만 구성되어 있어서 그에 따른 제약이 있었을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