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업학교는 실업에 종사하려는 사람들에게 필요한 지식과 기능을 훈련, 체득시키기 위하여 설치된 광복 이전의 교육기관이다. 1909년 4월에 「실업학교령」에 따라 신학제에 의한 실업교육이 시작되었다. 실업학교는 농업학교, 상업학교, 공업학교로 나누고, 수업연한은 3년이었다. 입학 자격은 12세 이상의 남자로서 보통학교 졸업 정도의 학력을 가진 자로 하였다. 일제하의 실업학교는 고급 인력의 양성을 억제하고 실무에 종사할 수 있는 근로자를 배출하기 위한 실업교육에 따라 설립되었다. 60∼70%가 농업계 학교로 편중되었다.
1909년 4월에 「실업학교령」이 공포되어 신학제에 의한 실업교육이 마련되었다. 이에 따르면, 실업학교는 농업학교 · 상업학교 · 공업학교로 나누고, 수업연한은 3년으로 하되, 지방의 실정에 따라 1년을 단축 또는 연장할 수 있도록 하였다.
학부에서는 실업학교의 목적을 밝히면서 실업교육에 종사하려는 자에 대하여 적절한 교육을 베푸는 데 있으므로 보통교육을 위하여 베푸는 것과는 그 취지가 다르며, 그 본질에 따라 지방산업의 현상과 장래의 취향에 비추어 적당히 경영하여야 한다고 하였다. 또한 농업 · 상업 · 공업 중 한 가지를 택하거나 두 개 이상을 합하여 하나의 실업학교로 설립할 수 있으며, 학과목에 있어서도 규정 외에 적절히 취사선택이나 통합이 가능하도록 하였다.
이에 따라 통감부는 같은 해에 관립인천일어학교를 개편하여 관립인천실업학교를 설립하고, 부산의 개성학교(開成學校)를 인수하여 공립부산실업학교로 개편하였으며, 평안북도에는 정주실업학교(定州實業學校)를 설립하였다. 1910년에는 다시 평양농학교 · 대구농림학교 · 전주농림학교 · 군산실업학교 · 춘천실업학교 등이 설립되었다. 1910년 4월 말 실업학교의 상황을 보면 〈표 1〉과 같다.
학교명 | 수업 연수 | 학생수 |
---|---|---|
관립 인천실업학교 공립 부산실업학교 공립 대구농림학교 공립 전주농림학교 공립 진주실업학교 공립 광주농림학교 공립 춘천실업학교 공립 군산실업학교 공립 정주실업학교 공립 제주농림학교 도립 평양농업학교 도립 함흥농업학교 |
3 3 본과 2, 속성과 1 2 3 본과 3, 속성과 1 2 2 2 3 본과 2, 속성과 1 2 |
160 87 81 5 ? ? 27 40 ? ? 81 ? |
〈표 1〉 실업학교 현황 (1910. 4.) | ||
*자료 : 『朝鮮敎育史考』(高橋濱吉, 1927) |
이렇듯 일제 통감부가 다른 학교에 비하여 실업학교를 확충한 것은 한국인에 대한 우민화정책으로, 하급근로자를 양성하여 노동력을 착취하기 위한 수단이라 할 수 있다. 1910년에 다시 「실업보습학교규정(實業補習學校規定)」을 공포, 수업연한 2년 이내의 실업보습학교를 설치할 수 있도록 하여 지방의 실정과 직업의 종류에 따라 편리한 시간과 계절을 이용하도록 하였다.
당시 실업학교의 입학자격은 12세 이상의 남자로서 보통학교졸업 정도의 학력을 가진 자로 하였으며, 학년은 3학기로 나누었다. 실업학교의 학과목 및 매주 교수시수표는 〈표 2〉와 같으며, 본과의 교과목 중 실업에 과한 과목은 다음과 같다.
① 농업 : 기후 · 토양 · 수리 · 비료 · 농구(農具) · 농작물 · 원예 · 병충해 · 농산제조 · 양금(養禽) · 양잠 및 제종(製種) · 상수재배(桑樹栽培) · 제사(製絲) · 조림 · 임산제조 · 양축 · 수의(獸醫) · 어로 · 양식 · 채조(採藻) · 수산제조 · 농업경제 및 기타.
② 상업 : 상업지리 · 상업부기 · 상업문(商業文) · 상업산술 · 경제 · 상품 · 상사요항(商事要項) · 상업영어 등.
③ 공업 : 용재(用材) · 용구 · 측량 · 제도(製圖) · 회화 · 기직(機織) · 염색 · 제지 · 화학제조 · 분석 · 조가(造家) · 도자기 · 채광도금 · 주공(籌工) · 단공(鍛工) · 판금세공 · 죽세공 · 공업경제 및 기타로 되어 있다.
학교 | 농업학교 | 상업학교 | 공업학교 | ||||||||
---|---|---|---|---|---|---|---|---|---|---|---|
학과목 | 학년 | 1 | 2 | 3 | 1 | 2 | 3 | 1 | 2 | 3 | |
수신 | 1 | 1 | 1 | 1 | 1 | 1 | 1 | 1 | 1 | ||
국어 및 한문 | 3 | 2 | 2 | 3 | 2 | 2 | 3 | 2 | 2 | ||
일어 | 6 | 3 | 2 | 10 | 8 | 7 | 6 | 3 | 2 | ||
수학 | 5 | 4 | 4 | 5 | 4 | 3 | 5 | 5 | 5 | ||
이과 | 4 | 3 | 2 | 4 | 4 | 2 | 4 | 4 | 4 | ||
지리 | - | - | - | 2 | - | - | - | - | - | ||
도화 | 1 | - | - | 1 | 1 | - | 1 | - | - | ||
법규 | - | - | 1 | - | - | 1 | - | - | 1 | ||
실업 | 9 | 15 | 15 | 6 | 13 | 13 | 9 | 15 | 15 | ||
실습 | 6∼10 | 6∼10 | 6∼10 | - | - | 3∼6 | 6∼10 | 6∼10 | 6∼10 | ||
측량 | - | 2 | 2 | - | - | - | - | - | - | ||
체조 | 1 | 1 | - | 1 | 1 | 1 | 1 | - | - | ||
계 | 30 | 30 | 30 | 34 | 34 | 30 | 30 | 30 | 30 | ||
〈표 2〉 학과목 및 매주 교수시시표 (1910) | |||||||||||
*자료: 『조선교육사』(이만규, 1949) |
〈표 2〉에서 수학은 산술 · 대수 · 기하가 보통이고, 공업학교에 삼각과 부기, 농업학교에 부기, 상업학교에는 이 밖에 주산이 더 과하여졌다. 이과는 박물 · 물리 · 화학 · 생리위생이 공통이었고 특히 상업학교에는 지문(地文)이 이과에 포함되었다. 한편 실업보습학교는 수신 · 국어 및 한문 · 일어 · 산술 및 실업에 관한 과목으로 하고, 이 중 국어 및 한문과 일어를 빼거나 지방실정에 따라서 다른 교과목을 과할 수 있도록 하였다.
국권상실과 함께 일제의 식민지교육정책이 실시되어 노동력을 착취하기 위한 저급한 실업교육이 더욱 장려되었다. 이른바 ‘시세와 민도에 맞는 교육’이라 하여 실업학교의 유형을 종전의 농업학교 · 상업학교 · 공업학교 외에 간이실업학교를 두어 실무자교육을 강조하였다. 실업학교는 수업연한 2∼3년에 12세 이상을 대상으로 한 중등교육기관에 속하였으나, 간이실업학교는 보통학교나 실업학교에 부설하여 교육 정도나 연령에 구애됨이 없이 실업교육을 희망하는 자에게 입학을 허용하였다. 또한 경우에 따라서는 야간, 일요일, 하계 및 동계휴일 등을 이용하여 교육을 받을 기회를 주었다는 점에 특색이 있다.
한편 일제는 1910년 3월부터 1918년 11월까지 8년 동안 토지조사사업을 실시하여 우리나라 쌀을 수탈하기 위한 산미증식계획을 세웠는데, 이에 따른 노동력착취를 위하여 농촌근로자양성기관인 농업학교를 우선적으로 설립하였다. 즉 우리나라 농민들이 증산한 쌀을 일본인에게 헐값으로 넘기고 대신 만주에서 조를 들여오는 식의 산미증식계획을 담당할 인재를 양성하기 위하여 설립된 것이 당시의 농업학교였던 것이다. 이에 따라 1912년 현재의 총 19개 실업학교 중에서 농업학교가 15개를 차지하였고, 역시 19개 간이실업학교 중에서 15개가 농업학교였다.
1919년에는 실업학교가 22개 학교에 재학생 2,034명, 간이실업학교가 67개 학교에 재학생 1,252명으로 각각 증가되었다. 1922년 2월에 공포된 「제2차 조선교육령」에서는 “실업교육은 실업학교령에 따른다.”고 하였다. 「실업학교령」에서는 실업에 종사하는 자에게 필요한 지식 · 기능을 수여함을 목적으로 하며 아울러 덕성의 함양에 힘써야 한다고 하였다.
실업학교의 종류는 공업학교 · 농업학교 · 상업학교 · 수산학교 · 실업학교 등 기타 실업교육을 하는 학교와 실업보습학교로 나누었다. 수업연한은 3년에서 5년으로 하였으며, 6년제 보통학교의 졸업생을 입학대상으로 하였다. 사정에 따라 직업학교 · 실업보습학교 · 보통학교 4학년 수료자들에게도 입학할 길을 주었다. 당시의 각종 실업학교의 운영과 교육내용을 살펴보면 아래와 같다.
① 농업학교 : 농업학교는 지역의 실정에 따라 농업과 · 양잠과 · 원예과 · 축산과 또는 임업과 중에서 1개 또는 3개 학과 이상을 설치하였다. 학과목은 수신 · 공민과 · 일어 · 수학 · 물리 및 화학 · 박물 · 체조와 농업에 관한 학과목 및 실습으로 하였으며, 수업연한이나 지역의 실정에 따라 지리 · 역사 · 부기 · 도화 · 수공 · 외국어 · 농업 · 상업 · 수산 및 기타 학과목을 가설할 수 있도록 하였다. 농업에 관한 학과목은 작물 · 원예 · 토양 · 비료 · 작물병충해 · 축산 · 가축생리 · 농산제조 · 양잠 · 잠체생리(蠶體生理) · 잠병(蠶病) · 제사 · 농업경제 · 조림 · 삼림보호 · 삼림이용 · 삼림수학 · 삼림경리 · 농림공학 · 수의 등으로 되어 있었다.
② 공업학교 : 공업학교의 학과목은 수신 · 공민과 · 일어 · 수학 · 물리 및 화학 · 도화 · 체조와 공업에 관한 학과목 및 실습으로 하되 수업연한과 학과의 종류에 따라 외국어 · 박물 · 지리 · 역사 · 상업 · 공업요항 및 기타의 학과목을 가설할 수 있도록 하였다. 학과는 기계과 · 전기과 · 토목과 · 건설과 · 채광과 · 응용화학과 · 전기화학과 · 요업과 · 염직과 · 금속공예과 등 10개 학과로 나누고 이들 각각을 세분하여 그 중에서 적절히 공업에 관한 학과목을 택하도록 하였다. 여학생에게는 염색 · 기직(機織) · 방직 · 제사 · 도안 · 분석 등 여자에게 적당한 것을 선택하여 정하도록 하였다.
③ 상업학교 : 상업학교의 학과목은 수신 · 공민과 · 일어 · 수학 · 지리 · 역사 · 이과 · 외국어 · 체조와 상업에 관한 학과목 및 실천으로 하되 이 밖에 도화, 공업과 농업 등의 기타 학과목을 가설할 수 있었다. 여학생에게는 이 밖에 가사 및 재봉 · 도화 · 음악 등을 과하게 하였다. 상업에 관한 학과목은 상사요항 · 부기 · 상품 · 상업학 · 상업산술 · 상업지리 · 상업사 · 상업법규 · 상업영어 · 타자 · 속기술과 기타의 필요한 사항에서 선택하도록 하였다.
④ 수산학교 : 수산학교의 학과는 수산과 · 양식과 · 어로과 · 제조과 · 원양어업과 등으로 나누고, 지역의 실정에 따라 1개 또는 2개 학과 이상을 설치할 수 있도록 하였다. 학과목은 수신 · 공민과 · 국어 · 수학 · 지리 · 물리 및 화학 · 박물 · 체조와 수산에 관한 학과목 및 실습으로 하되 지역의 실정에 따라 외국어 · 역사 · 부기 · 도화 · 농업 · 상업 및 기타의 학과목을 가설할 수 있도록 하였다. 수산에 관한 학과목은 수산양식 · 어로 · 조선 · 항해 · 운용(運用) · 어획물처리 · 냉장 · 수산제조 · 수산화학 · 미생물 · 수산위생 · 응용기계 · 제도(製圖) · 수산동물 · 수산식물 · 해양 · 기상 · 수산법규 · 수산경제와 기타 필요한 사항에서 선택하여 정하였다.
한편, 1935년에는 「실업보습학교규정」이 개정되어, 종래의 간이실업학교를 폐지하고 실업보습학교를 설치하였다. 수업연한은 2∼3년을 원칙으로 하되 농업을 교수하는 실업보습학교는 입학자격이나 교수시수 등에 따라 1년 이내를 단축할 수 있도록 하였다. 농업을 가르치는 실업보습학교의 경우, 종래 2년이었던 수업연한을 1년으로 단축하고 기숙사를 마련해서 전원을 기숙제로 하였는데, 이는 단기에 농촌청년을 양성하여 그 마을의 중심인물로 삼고자 한 것이었다. 따라서 실업보습학교에 입학할 수 있는 자격은 보통학교과정을 마친 12세 이상의 자라고 하였으나 실제로는 체력이 충실한 연장자에 한하였으며, 24시간 교육을 통하여 집중적인 직업훈련과 더불어 일제에 충량한 국민을 육성하기 위한 훈련장의 구실을 하였다.
1925년 현재의 통계를 보면 실업학교는 22개 농업학교, 16개 상업학교, 1개 공업학교, 1개 상공학교, 1개 수산학교 등 총 44개 학교에 재학생은 5,311명이고, 실업보습학교는 20개 학교에 재학생은 총 892명이었다. 그 뒤 점차 증가되어 1931년에는 53개 실업학교에 재학생 8,448명, 83개 실업보습학교에 재학생 3,388명이었으며, 1935년에는 다시 60개 실업학교에 재학생 1만2015명, 94개 실업보습학교에 재학생 3,829명으로 되었다. 1935년 5월 말 현재의 실업학교 및 실업보습학교의 현황을 살펴보면 〈표 3〉과 같다.
학교 | 학교수 | 학급수 | 직원수 | 학생수 | |||||
---|---|---|---|---|---|---|---|---|---|
한국인 | 일본인 | 계 | 남 | 여 | 계 | ||||
실업학교 | 농업 공립 상업 공립 사립 공업 관립 상업 공립 수산 공립 직업 공립 사립 |
30 13 6 1 1 3 4 2 |
142 90 52 17 10 11 25 9 |
44 14 55 1 1 2 6 21 |
258 169 41 19 18 16 23 2 |
302 183 96 20 19 18 29 23 |
5,644 2,570 2,065 62 236 205 509 251 |
- - 365 - - - - 109 |
5,644 2,570 2,430 62 236 205 509 360 |
계 | 60 | 356 | 144 | 546 | 690 | 11,541 | 474 | 12,015 | |
업보습학교 | 농업 관립 공립 사립 상업 공립 사립 공업 공립 수산 공립 여자 실수공립 |
1 63 2 13 1 12 1 1 |
2 111 4 28 2 29 2 2 |
1 50 4 8 2 12 1 1 |
3 78 - 12 2 29 4 1 |
4 128 4 20 4 41 5 2 |
31 2,258 94 676 140 493 43 - |
- - - - - 40 - 54 |
31 2,258 94 676 140 533 43 54 |
계 | 94 | 180 | 79 | 129 | 208 | 3,735 | 94 | 3,829 | |
〈표 3〉실업학교 및 실업보습학교 현황 (1935) | |||||||||
*자료 : 교육과정변천사연구(함종규, 1976) |
한편 1930년대 중반까지 거의 볼 수 없었던 사립실업학교 및 실업보습학교가 1940년 이후 각각 25개와 17개 학교로 집계된 점으로 보아, 전쟁수행 등으로 인한 어려운 재정사정에 따라 경비부담을 덜기 위하여 이들 사립학교설립에 통제를 가하지 않고 권장하였던 결과라 볼 수 있다. 참고로 1940년의 사립실업학교 현황을 보면 〈표 1〉와 같다.
학교명 | 소재지 | 설립 연도 |
수업 연한 |
학생수 | |
---|---|---|---|---|---|
신천(信川)농업학교 | 황해도 | 1938 | 3 | 한(韓) | 161 |
일(日) | 1 | ||||
선린(善隣)상업학교 | 서울 | 1907 | 5 | 한(韓) | 655 |
일(日) | 461 | ||||
동성(東星)여자상업학교 | 서울 | 1922 | 5 | 471 | |
경성(京城)여자상업학교 | 서울 | 1926 | 4 | 524 | |
대동(大東)상업학교 | 서울 | 1934 | 5 | 581 | |
한성(漢城)상업학교 | 서울 | 1935 | 5 | 339 | |
덕성(德成)여자실업학교 | 서울 | 1935 | 3 | 180 | |
청주(淸州)상업학교 | 청 주 | 1935 | 5 | 한(韓) | 395 |
일(日) | 13 | ||||
숭인(崇仁)상업학교 | 평양 | 1930 | 5 | 586 | |
협성(協成)실업학교 | 서울 | 1927 | 3 | 261 | |
향상(向上)여자실업학교 | 서울 | 1936 | 3 | 295 | |
삼도(三島)고등실업학교 | 부 산 | 1931 | 4 | 한(韓) | 58 |
일(日) | 537 | ||||
고흥(高興)농업실수학교 | 전남 | 1933 | 1 | 25 | |
응세농도(應世農道)학교 | 전남 | 1934 | 1 | 25 | |
조양농사(朝陽農士)학원 | 황해 | 1931 | 2 | 58 | |
춘광(春光)원예학교 | 황해 | 1935 | 3 | 138 | |
보명(普明)농민학교 | 평 남 | 1936 | 2 | 23 | |
김석산농사(金石山農士)학교 | 평북 | 1936 | 2 | 32 | |
보인(輔仁)상업전수학교 | 서울 | 1938 | 3 | 150 | |
대동(大東)상업전수학교 | 서울 | 1938 | 3 | 180 | |
인천(仁川)상업전수학교 | 인천 | 1939 | 3 | 242 | |
초량(草梁)상업실수학교 | 부산 | 1939 | 3 | 156 | |
선천(宣川)상업실수학교 | 평북 | 1936 | 3 | 168 | |
함남(咸南)상업전수학교 | 함남 | 1940 | 3 | 335 | |
성진(城津)상업보습학교 | 함북 | 1932 | 3 | 400 | |
〈표 4〉 사립실업학교 현황 (1940.5) | |||||
*자료 : 『朝鮮諸學敎一覽』(朝鮮總督府, 1940) |
이들 실업학교는 광복과 함께 폐지되었으며, 광복 이후 현재까지 실업계 중고등학교를 중심으로 한 각종학교에서 중등실업교육을 실시하고 있다.
이상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일제하의 실업학교는 고급인력의 양성을 억제하고 실무에 종사할 수 있는 근로자를 배출하기 위한 실업교육 진작에 따라 설립되었으며, 60∼70%가 농업계학교로 편중되었음을 알 수 있다. 일제의 우민화정책의 의도에도 불구하고 이들 실업학교를 중심으로 우리나라의 근대적 실업교육이 비정상적으로나마 자리를 잡게 되었고, 광복 후 중등실업교육의 기반이 되었다는 점에서 그 의의를 찾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