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경남도 선천군 선천면 내문리 40번지에서 출생. 한국전쟁시 소위로써 제6사단 제7연대 대전차포대 2소대장으로 참전하여 전공을 세웠다. 심일소위는 서울대 사범대 2년을 중퇴하고 육군에 입대하여 소위로 임관하였다.
한국전쟁 발발 당일, 38선 남쪽 4킬로미터 지점에 있는 곰나루터에 57미리 대전차포 2문을 배치하고 있다가, 07시경에 출현한 적전차 10여대에 대하여 대전차포를 발사하였으나 적 전차는 끄덕도 하지 않았다.
그러자, 진지를 춘천 북쪽 4킬로미터 지점의 옥산포(玉山浦)로 옮겨 적 전차에 대비하는 한편 자신은 특공조를 편성하여 화염병과 폭약을 가지고 육탄으로 적 전차를 파괴하여 전진을 저지하였다.
심일소위의 특공작전으로 하루만에 춘천을 점령하려고 했던 북한군 2군단의 기도는 차질을 빚게 되었고, 아군 제6사단이 춘천을 2일씩이나 방어할 수 있게 되어 아군의 전략을 유리하게 전개하는데 크게 공헌하였다. 이후 1951년 1월 7사단 수색중대장 임무수행 중 강원도 영월지구전투에서 교전 중 전사하였다. 1951년 10월 15일 태극무공훈장이 수여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