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용 요약
양원왕은 삼국시대 고구려 제24대 왕이다. 재위 기간은 545~559년이다. 안원왕의 맏아들로 태자에 책봉되었으나 자기 소생을 왕으로 세우려고 싸우던 두 왕비와 그들을 후원한 귀족세력간의 충돌 속에서 즉위했다. 그 결과 왕의 전제적 권한은 크게 도전받았고 재위 기간 동안 귀족세력간의 분쟁이 계속되었다. 중국의 북제와 외교관계를 유지했으나 돌궐과의 대치로 국력을 소모했고 그 와중에 신라와 백제 연합군에게 한강 유역을 빼앗겼다. 대외적 위기상황이 계속되자 귀족들이 분쟁을 중단하고 귀족연립정권을 형성해 국정의 안정을 도모하기도 했다.
정의
고구려의 제24대(재위: 545년~559년) 왕.
개설
생애 / 활동사항
이러한 왕권의 동요와 더불어 국제관계도 불안한 상황이었다. 북아시아의 신흥 유목 기마민족인 돌궐(突厥)이 551년에 고구려의 신성(新城)과 백암성(白巖城)을 공격하였다. 이에 장군 고흘(高紇)이 군사 1만을 거느리고 나아가 그들을 크게 격파했으나, 돌궐과의 대치로 고구려는 매우 큰 국력소모를 겪었다. 돌궐과의 대치상태 속에서 551년에는 신라와 백제의 연합군에 의해 한강유역을 빼앗겼다. 중국과는 동위(東魏) 및 동위를 계승한 북제(北齊)와 교류를 계속하였다. 550년에는 북제로부터 ‘사지절 시중 표기대장군 영호동이교위 요동군개국공 고구려왕(使持節侍中驃騎大將軍領護東夷校尉遼東郡開國公高句麗王)’에 봉해졌다. 그러나 552년 북제의 사신 최유(崔柳)가 무례한 행동을 보이고, 553년에 북제의 문선제(文宣帝)가 고구려의 세력이 미쳤던 거란족(契丹族)에 대해 친정(親征)을 함으로써 양국간의 긴장이 고조되기도 하였다.
이와 같은 대외적 위기상황 하에서 고구려의 귀족들은 서로 간의 분쟁을 중단하고 귀족연립정권(貴族聯立政權)을 형성했다. 즉, 실권직인 대대로(大對盧)를 유력 귀족들 사이에서 3년마다 선임하고 중임할 수 있는 형태로 개편함으로써 장기간에 걸친 대외적 위기상황에서 귀족 간의 타협과 연립을 통한 정권의 안정적인 지속을 도모하였다.
참고문헌
- 『삼국사기(三國史記)』
- 『위서(魏書)』
- 『북제서(北齊書)』
- 『북사(北史)』
- 『양서(梁書)』
- 『일본서기(日本書紀)』
- 『고구려 불교사 연구』(정선여, 서경문화사, 2007)
- 「6∼7세기 정치 세력의 동향과 귀족 연립 체제」(임기환, 『고구려 정치사 연구』, 한나래, 2004)
- 「귀족연립정권의 성립」(노태돈, 『고구려사연구』, 사계절, 1999)
- 「5∼6세기(世紀) 동(東)아시아의 국제정세(國際情勢)와 고구려(高句麗)의 대외관계(對外關係)」(노태돈, 『동방학지(東方學志)』44, 1984)
- 「고구려(高句麗)의 한강유역상실(漢江流域喪失)의 원인(原因)에 대하여」(노태돈, 『한국사연구(韓國史硏究)』13, 1976)
- 「고구려(高句麗)의 요서진출기도(遼西進出企圖)와 돌궐(突厥)」(이용범, 『사학연구(史學硏究)』4, 19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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