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광읍지(靈光邑誌)』는 대한제국기인 1899년(광무 3)에 편찬하였다.
지도를 첨부하였다. 수록 항목은 건치연혁(建置沿革), 군명(郡名), 관원(官員), 성지(城池), 도로, 공해(公廨), 방리(坊里), 산천, 관애(關阨), 봉수(烽燧), 제언(堤堰), 사찰, 누대제영(樓臺題詠), 장시(場市), 교량(橋梁), 진도(津渡), 성씨(姓氏), 풍속(風俗), 형승(形勝), 학교, 사우(祠宇), 단묘(壇廟), 역원(驛院), 고적(古蹟), 물산(物産), 진공물선(進貢物膳), 상납결총(上納結摠), 호총(戶摠), 환총(還摠), 군총(軍摠), 읍재선생(邑宰先生), 인물, 충신, 문과(文科), 효자, 효부, 열녀, 효녀 등으로 구성하였다.
『여지도서(輿地圖書)』에 비해 건치연혁 항목이 간략한데, 『동국여지승람(東國輿地勝覽)』을 참조한 것으로 보인다. 방리 항목에는 총 29개의 면을 기록하였다. 산천 항목에서는 이전 읍지에 기재되었던 파시전(波市田)에 대해 언급한 반면, 저본에 기재된 부속 도서(島嶼) 내용은 전부 삭제하였다. 누대제영과 읍재선생, 충신, 문과, 효자, 효부, 열녀, 효녀 등 인물과 관련한 항목을 매우 상세하게 기록하였으며, 항목도 세분화하였다. 기존 읍지들의 내용에서 많은 분량을 추가하고 보태었으나, 부분적으로 생략하기도 하였다.
읍재선생 항목에는 1553년(명종 8)1899년까지 부임 시기 및 이임 시기, 퇴직 사유를 기재하였다. 충신 항목에는 임진왜란 · 병자호란 때 의병들의 활동과 강항(姜沆: 15671618)에 대해 자세히 기록하였다. 물산 항목에서는 22종류의 특산물을 소개하였는데, 특히 수산물이 풍부하다고 썼다. 군총과 상납결총, 환총 등 군사 재정과 관련한 항목에는 갑오개혁 이후의 변화 사항과 함께 앞 시대의 내용도 함께 수록하였다.
1899년에 제작된 『호남읍지(湖南邑誌)』와 체제는 같지 않으나 내용상 일치되는 부분이 많으며, 인명을 기록한 항목은 본지가 훨씬 풍부한 내용을 담고 있다. 군사 재정과 관련한 항목도 갑오개혁 이후의 변화 사항과 함께 앞 시대의 내용을 충실히 기재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