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등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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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등굿 / 초감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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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력 2월 제주도에서 영등신에게 어업과 해녀 채취물의 풍요를 비는 마을굿.
•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을 거쳐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내용 요약

영등굿은 음력 2월 제주도에서 영등신에게 어업과 해녀 채취물의 풍요를 비는 마을굿이다. 영등굿, 영등환영제, 영등송별제, 영등손맞이라고도 한다. 영등신은 본래 ‘강남천자국’ 또는 ‘외눈박이섬’에 사는 신이다. 매년 음력 2월 초하룻날에 제주도로 찾아왔다가, 그달 15일에 다시 본국으로 돌아간다고 한다. 영등신은 섬을 돌면서 바다에 미역, 전복, 소라 등 해녀 채취물의 씨를 뿌려 번식시켜준다. 또, 어업이나 농업에도 풍요를 준 뒤 본국으로 돌아간다고 한다. 제주도의 경우 영등신은 해녀나 어부에게 풍요를 주는 내방신(來訪神)의 성격이 짙다.

목차
정의
음력 2월 제주도에서 영등신에게 어업과 해녀 채취물의 풍요를 비는 마을굿.
내용

음력 2월에 영등신에게 올리는 당굿으로 마을에서 행하는 당굿이지만, 그 마을의 수호신인 본향당신(本鄕堂神)이 아닌 영등신을 맞이하여 어업과 해녀 채취물의 풍요를 비는 굿이다. 영등은 ‘연등(燃燈)’ · ‘영등(迎燈)’ 등의 한자표기가 보이나, 오늘날 민간에서는 ‘ 영등할머니(영등할망)’이라고 하여 여신으로 생각되고 있다.

영등신은 본래 ‘강남천자국’ 또는 ‘외눈박이섬[一目人島]’에 사는 신인데, 이 나라에서 매년 음력 2월 초하룻날에 제주도로 찾아왔다가 이 달 15일에 다시 본국으로 돌아간다고 한다. 제주도 동쪽 끝에 있는 구좌읍 소섬[牛島]으로 들어와서 해변의 보말(고동류의 한 종류)을 잡아먹으며 섬을 돌면서 바다에서 미역 · 전복 · 소라 등 해녀 채취물의 씨를 뿌려 번식시켜준다. 또, 어업이나 농업에도 풍요를 준 뒤 다시 소섬을 거쳐 본국으로 돌아간다고 전한다.

‘영등할망’이 찾아드는 이 기간에는 배를 타고 바다에 나가서는 안 되며 빨래를 해서도 안 된다. 만일, 빨래를 해서 풀을 먹이면 집에 구더기가 번식한다고 한다. 제주도의 경우 이 신은 풍신의 성격도 다소 보이지만, 그보다도 해녀나 어부에게 풍요를 주는 내방신(來訪神)의 성격이 짙다. 영등신에 대한 굿을 영등굿이라고 통칭하지만, 마을에 따라서는 2월 초하룻날에 이 신을 맞이하여 비는 굿을 ‘영등환영제’라 하고, 2월 12일에서 15일 사이의 어느 날에 이 신을 보내는 굿을 ‘영등송별제’라 한다. 또는 ‘영등손맞이’라 하여 이 기간의 어느 날을 정기적 제일로 정하여 한 번만 굿을 하는 곳도 있다.

영등굿이 행해진 기록은 『신증동국여지승람』에 다음과 같이 나타난다. “2월 초하룻날 귀덕(歸德) · 김녕(金寧) 등지에서는 목간(木竿) 12개를 세워서 신을 맞이하여 제사지내고, 애월(涯月)에 사는 이들은 떼[槎]모양을 말머리[馬頭]와 같이 만들어서 비단으로 곱게 꾸미고 약마희(躍馬戱)를 해서 신을 즐겁게 하였다. 보름날에 끝을 맺는데, 이를 연등이라 한다. 이달에는 승선(乘船)을 금하였다.” 이 기록으로 보아 영등굿은 매우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으며, 오늘날처럼 그때에도 귀덕 · 김녕 · 애월 등 주로 어촌에서 성행하였음을 알 수 있다.

오늘날의 영등굿은 마을에 따라 그 제차(祭次)가 다소 다르고 또 문헌에 기록되어 있는 제의와도 차이가 있다. 가장 보편적이고 전형적인 영등굿은 다음과 같다. 굿하는 전날 잠수회 · 부녀회 등 여성단체의 간부들이 모여 떡을 만들고 제물을 준비한다. 비용은 각 가정에서 수렴하거나 공공기금으로 충당한다. 제일(祭日) 아침이 되면 제물이 당에 운반되고, 심방 5, 6명이 무구(巫具)를 가지고 당으로 온다.

제단에는 메 · 시루떡 · 도래떡 · 생선 · 야채류 · 과일류 · 계란 · 술 · 쌀 · 실 · 돈 등이 올려진다. 이 제단은 마을 전체의 기원을 위한 것이다. 이밖에 각 집에서는 자기집안의 축원용 제물을 마련하여 당으로 모여든다. 모여드는 순서대로 각 집안의 작은 상이 제단 앞에 열을 지어 놓인다. 제단의 진설(제상차림)이 끝나면 그 당의 매인 심방이 수심방이 되고 소미[小巫] 3명이 악기를 치면서 굿이 시작되는데, 다음과 같은 순서와 내용으로 전개된다.

① 큰대세움 : 신이 하강하는 길이라고 하는 긴 대를 제장에 세운다. 이 큰대에는 창호지로 만든 ‘기매’와 마을 어선들의 기가 달려 펄럭인다. 그리고 이 대에 긴 무명을 묶어 매어 제장에 연결시켜놓고 있는데, 이 줄을 신이 건너오는 ‘다리’라고 한다.

② 초감제 : 모든 신들을 청하여 모셔서 기원하는 기본형식의 의례이다. 정장한 수심방이 노래와 춤을 섞어가며 우주개벽으로부터 지리적 · 역사적 형성과정, 그리고 제장의 위치, 날짜, 굿을 하는 동기 등을 차례로 노래하고 모든 신을 청하여 모신다. 그래서 신들이 즐거이 하강하였는가 여부를 점쳐 신의를 전달한 뒤, 이장의 부인을 선두로 참가한 각 가정의 부녀자들을 차례로 배례(拜禮)시키며 복을 빌어준다.

③ 요(용)왕맞이 : 바다를 관장하는 요왕[龍王]과 영등신을 맞아들여 기원하는 제차이다. 초감제가 끝나면 잠시 쉬고, 제장 중앙에 6∼8개씩 2열로 대를 나란히 지면에 꽂아 요왕문[龍王門]을 설비한다. 이 대는 용왕국의 문을 상징하는 동시에 대 사이의 길은 요왕과 영등신이 내림하는 길을 상징하는 것이다. 요왕문의 설비가 끝나면 정장한 수심방이 노래와 춤으로써 초감제를 되풀이한다.

다음에는 요왕과 영등신이 내림할 길을 치우고 닦는 과정으로, 수심방이 그 길을 춤으로 돌아보고 노래와 춤으로써 청소과정을 실연하는데 이를 ‘질침(길 닦음)’이라 한다. 길을 다 닦으면 ‘요왕다리’라고 하는 긴 무명을 요왕길에 깔아 놓고 요왕과 영등신을 맞아들인다. 요왕과 영등신을 맞고나서 임원이 되는 부녀자들에게 소지를 올리게 하고, 해상의 안전과 해녀 채취물의 풍요를 빈다. 다음은 요왕문열기로, 지면에 꽂아 놓은 대를 하나씩 차례로 뽑아 정리한다. 심방은 문을 열어 신을 보내는 노래를 부르고, 임원들은 그 앞에 꿇어앉아 문이 하나씩 열릴 때마다 돈(인정이라 함.)을 바치고 절을 한다.

④ 씨드림 · 씨점 : 씨드림이란 ‘씨를 뿌림’이라는 말로 영등신이 해녀 채취물의 씨를 뿌려주는 모의행위이다. 심방이 미역 · 전복 · 소라 등 씨를 많이 주고 가도록 빈 뒤, 요란하게 악기를 치는 가운데 해녀들이 바닷물에 들어가 여기저기에 좁씨를 뿌린다. 좁씨는 바로 해녀들 채취물의 씨가 되는 셈이다. 씨뿌리기가 끝나 제장에 돌아오면 수심방이 돗자리 위에 좁씨를 뿌리는데, 그 흩어진 밀도를 보아 어느 쪽에 채취물이 풍성할 것인가를 점친다. 이를 씨점이라 한다.

⑤ 지아룀 : 참가자들이 자기가 가져온 제물을 조금씩 백지에 싸서 바다에 던지는 것이다. 요왕과 선왕(船王), 그리고 바다에서 죽은 영혼들에게 바치는 의미가 있다.

⑥ 산받음 · 액막이 : 지아룀이 끝나면 제장에서 참가자들 각자의 1년간의 길흉을 점쳐주고, 마을 전체와 개인별로 액막이를 해준다.

⑦ 배방송 : 영등신을 본국으로 보내는 제차이다. 짚이나 널빤지로 작은 배를 만들고, 거기에 여러 가지 제물을 조금씩 실어 바다에 띄워 보내는 것이다. 이것으로 굿이 끝난다.

굿은 아침에 시작되어 해가 질 무렵에 끝이 난다. 오늘날의 배방송은 마을에서 짚이나 널빤지로 작은 배 하나만을 만들고, 굿이 끝나면 제물을 실은 이 모조선을 어선에 싣고 바다 멀리 나아가 띄워 보내지만, 예전에는 어선(뗏목)이 있는 집마다 모조선을 만들어왔다. 그래서 굿이 끝나면 각자 모조선에 제물을 싣고, 그 모조선을 뗏목에 실어 수심방의 신호에 따라 일제히 노를 저어 경주하며 나아가 모조선을 소섬 쪽으로 띄워보냈다 한다. 이것은 영등신을 보내는 경조(競漕 : 보트 경주)로서 여기에서 1등을 한 사람은 그 해에 풍어를 얻는다 하여 돼지를 잡아 잔치를 베풀곤 하였다 한다.

『신증동국여지승람』에 “목간 12개를 세워 신을 맞이하여 제사하였다.” 함은 요왕맞이 제차에 대를 세워 요왕문을 만들고 신을 맞이하던 모습이 아닌가 추정되며, “떼 모양을 말머리와 같이 만들어서 비단으로 꾸미고 약마희를 하였다.”는 약마희는 말이 뛰는 모습의 놀이가 아니라 ‘떼몰이놀이’의 이두표기로 추정되고 있다. 곧, 뗏목에 모조선을 싣고 뗏목을 몰아 경조해 가서 먼저 영등신을 치송하려던 배방송의 옛 모습의 기록으로 추정된다.

참고문헌

『한국풍속고(韓國風俗考)』(송석하, 일신사, 1960)
「제주도의 영등굿」(현용준, 『한국민속학』 1, 1969)
「약마희고(躍馬戱考)-영등굿에서의 경조민속(競漕民俗)-」(현용준, 『현평효박사회갑기념논총(玄平孝搏士回甲紀念論叢)』, 형설출판사, 19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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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필자
현용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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