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99년(광무 3)의 『영월군읍지(寧越郡邑誌)』는 당시 영월군수에 재임 중이었던 김필현(金弼鉉)이 중심이 되어 강원도 영월군(寧越郡) 지금의 [강원특별자치도 영월군]에서 편찬하였다.
1책 54장의 필사본이다. 크기는 세로 27.4㎝, 가로 19.5㎝이다. 표제는 ‘강원도영월군읍지(江原道寧越郡邑誌)’이고, 권수제는 ‘영월군읍지’이다. 서울대학교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주1이다. 1997년에 발행한 『규장각자료총서: 지리지편』의 『강원도읍지』 4권에 영인 수록되었다. 서울대학교 규장각 지리지 종합정보[https://kyujanggak.snu.ac.kr/geo]에서 원문을 열람할 수 있다.
이 밖에 강원도 영월 지역에 대한 관찬 읍지로는 18세기 후반의 『영월부읍지(寧越府邑誌)』와 이를 바탕으로 추가한 주2, 19세기 중엽에 편찬된 주3, 그리고 1898년(광무 2)에 편찬된 주4 등이 있다. 또 일본 동양문고가 소장한 『관동읍지(關東邑誌)』와 서울대학교 규장각한국학연구원 도서인 『관동읍지』, 일본 국립국회도서관이 소장한 『강원도읍지(江原道邑誌)』 등의 도지에도 영월 지역의 관찬 읍지가 수록되어 있어 자료적으로 상호 보충된다.
1899년(광무 3) 읍지상송령에 의해 편찬된 읍지를 바탕으로 하여 일제강점기에 베껴 썼다. 선생안(先生案) 항목 마지막에 영월군수 김필현(金弼鉉)의 1898년 1월 부임까지 기록하고 있어 편찬 연도를 짐작할 수 있다. 정조를 ‘당저(當宁)’라고 칭한 기록이 그대로 실려 있어, 앞부분은 18세기 말에 편찬된 주5를 바탕으로 하여 모자란 부분을 보태어 썼고, 경제 조항과 선생안 항목에는 그 뒤 변화상을 반영하였다.
수록 항목은 강계(疆界), 건치연혁(建置沿革), 군명(郡名), 방리(坊里), 산천, 성씨(姓氏), 인물, 결총(結摠), 호구(戶口), 조적(糶糴), 궁전(宮殿), 능묘(陵墓), 공해(公廨), 원우(院宇), 누대제영(樓臺題詠), 사찰, 봉수(烽燧), 진보(鎭堡), 고적(古蹟), 관원등품(官員等品), 봉급(俸給), 영월군선생안(寧越郡先生案) 순으로 구성하였다. 이 가운데 봉수와 진보 항목은 내용을 적지 않았다.
이 읍지는 1899년의 읍지상송령에 따라 기존의 영월 관련 관찬 읍지를 모두 수렴하여 편찬한 책을, 일제강점기에 다시 베껴 쓴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