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해주(海州). 호는 월주(月洲) · 난계(蘭溪). 경상남도 울산군 언양면(지금의 울산광역시 울주군 언양읍) 출생.
언양공립보통학교를 마치고 1932년 일본 오사카[大阪] 나니와중학[浪速中學] 속성과를 수료하였다. 그 뒤 『조선일보』 · 『동아일보』 등에 동시(童詩)를 발표하다가 다시 일본으로 건너가 1939년 도쿄 국민예술원(國民藝術院)을 졸업하였다.
광복 후 경남여자고등학교(慶南女子高等學校)에서 교편생활을 하다가 1949년 단편소설 「남이와 엿장수」(고무신으로 改題)가 『서울신문』 신춘문예에 입선, 이 작품을 『신천지(新天地)』에 발표하고, 이듬해 단편 「머루」가 『서울신문』 신춘문예에 당선되면서 작품활동을 시작하였다.
그 뒤 부산중학교에 전임하였다가 1955년 조연현(趙演鉉) 등과 함께 문예지 『현대문학』의 창간에 간여하였다.
같은 해에 제1회 한국문학가협회상을, 1960년에는 아세아자유문학상을, 1977년에는 대한민국예술원상을 각각 수상하였다.
주요 작품으로는 「화산댁이」(1952) · 「윤이와 소」(1952) · 「코스모스와 소년」(1953) · 「갯마을」(1953) · 「박학도(朴學道)」(1955) · 「여우」(1957) · 「후조(候鳥)」(1958) · 「명암(明暗)」(1958) · 「메아리」(1959) · 「개개비」(1959) 등이 있다.
또한 「은냇골 이야기」(1961) · 「수련(睡蓮)」(1961) · 「섬에서 온 식모(食母)」(1965) · 「실걸이꽃」(1968) · 「어린 상록수」(1975) 등이 있다.
이동안 『머루』(1954) · 『갯마을』(1956) · 『명암』(1958) · 『메아리』(1960) · 『수련(睡蓮)』(1965) · 『황혼』(1976) · 『잃어버린 도원(桃園)』(1978) 등의 창작집과 『오영수전집』(1968) · 『오영수대표작선집』(1974) 등의 전집 · 선집을 냈다.
총 150여 편의 많은 작품을 남겼는데, 모두가 단편소설이라는 데서 그의 문학적 성격의 일단을 보여준다. 전형적 단편작가로서 작풍(作風)은 주로 한국적인 소박한 인정이나 서정의 세계에 기조를 두었다.
작중 인물들은 온정과 선의의 인간들이며, 도시보다는 향촌을, 기계문명보다는 자연을, 현대적 세련미보다는 고유한 소박성을 각각 그리워하며 예찬하는 경향을 보였다.
「머루」 · 「남이와 엿장수」에 보인 소박한 인정적 서정 세계가 「박학도」 · 「종차(終車)」(1956) 등에 와서는 유형적 인간의 추구와 성격 창조까지 심화되었다.
「후조」나 「명암」 등에 이르러서는 그 속에 부여된 의미를 제시하거나 주장하였다. 이러한 전개는 다시 「내일의 삽화(揷話)」(1958)에 오면서 담담한 인간 긍정의 사상이 인간 옹호의 사상으로 변모하는 양상을 보이기도 하였다.
이와 같은 휴머니즘이나 전통 옹호의 특성 때문에 역사나 사회에 대한 작가적 책무의 문제가 취약점으로 지적되기도 하였다. 그러나 인간의 원초성에 대한 긍정, 향토성의 옹호, 반문명적 · 반도시적 성격은 1950년대 이후 급격히 성행한 외래 문화 수용에 대한 반작용이라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