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용 요약
정의
1908년, 신채호(申采浩)가 지은 전기(傳記).
서지사항
구성 및 형식
5장부터 18장까지가 임진왜란과 관련한 이순신의 활약을 재현한 것으로, 전체적 일대기보다 일본과 맞선 영웅의 면모를 그리는 것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그리고 이순신의 억울한 투옥에서 드러난 조선 정치의 부패와 당쟁 등을 비판한다. 누명에 따른 고난과 가족의 희생에도 멸사봉공을 지켜나간 그의 충절을 기리고 넬슨 등의 역대 해군 영웅에 비해서 그의 전공이 더 우월함을 강조하며 결론을 맺는다.
내용
이순신은 35세에 훈련원 봉사(訓練院奉事)에 부임한 이래 문란한 군기를 바로 잡으려고 노력했으며 힘 있는 사람에게 의지하여 출세를 도모하지 않는다. 오직 정의와 성실밖에 모르는 그에게 심한 모략과 중상이 늘 뒤따른다. 39세에 함경북도 경원군 건원보권관(乾原堡權管)으로 전임되어 변방에 출몰하는 여진족을 기계(奇計)로 처치한 공적을 병사(兵使) 김우서(金禹瑞)가 시기하여 허위 보고서를 올려 논공이 중지되어 정기 승급에서 겨우 일 계급 승진했을 뿐이다.
직속상관인 병사 이일(李鎰)이 이순신의 녹둔도(鹿屯島) 증원군 요청을 묵살한 잘못과 그로 인해 생긴 피해에 대한 책임이 자기에게 돌아올 것을 두려워한 나머지 심한 형벌을 가하여 입을 막으려 했으나 여의치 않자 무고(誣告)하여 관직을 삭탈하고 백의종군하게 한다. 당쟁으로 인한 모략과 승진이 지연되다가 임진왜란을 앞두고 47세에 전라 좌수사에 임명된다. 이때 왜군의 침입에 무방비 상태에 놓여 있는 조선과는 달리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대대적인 침공 준비를 한다. 전라 좌수사로 부임한 이순신은 각종 총통과 군선(軍船)을 제조하고 거북선을 정비하여 전비(戰備)를 강화하는 데 전력을 기울인다.
드디어 1592년 왜구가 부산을 함락하자 이순신은 다른 군영(軍營)의 도움 없이 휘하의 85척 병선만을 거느리고 부산으로 향한다. 그리하여 1차 출전인 옥포해전과 2차 출전인 당포(唐浦)해전, 그리고 3차 출전인 견내량(見乃梁) 싸움에서 큰 전과를 거둔다. 견내량해전에서 왜군들은 이순신의 위용에 눌려 평양까지 진출한 고니시 유키나가도 후퇴하게 된다. 4차 출전인 부산포해전에서도 왜선 100여 척을 격파하는 연속적인 대승리를 거둔다.
전쟁이 장기화되자 조정에서 수군의 중요성을 인식해 이를 총지휘할 직책을 설치하여, 이순신을 경상도 · 전라도 · 충청도의 3도 수군을 통제하는 삼도수군통제사(三道水軍統制使)로 임명한다. 그리하여 민주적으로 수군의 지휘권을 행사하며, 군민 합작으로 둔전(屯田)을 설치하고, 군비를 확충하면서 왜군의 동정을 관찰한다.
이순신이 통제사로 있는 동안에 원균의 시기와 음모가 깊어지면서 위급하고 중요한 전투에서 군령을 위반한다. 이 위반을 해결하지 못해 병영이 혼란해지자 자신의 직책을 교체해 주기를 원했으나, 충청 병사로 전직된 원균이 당쟁을 이용해 모해 공작을 전개한다. 이때 조선에서 작전을 수행하던 고니시와 가토 기요마사 등이 당쟁과 원균의 시기심을 이용해 이순신을 제거하려 하고 그의 함대를 유인해 기습하려 간계를 세운다. 이는 원균을 비롯한 서인(西人) 일당에게 좋은 빌미가 되어 이순신을 중상 모략하여 하옥한다.
정탁(鄭琢)의 구명에 의해 이순신이 두 번째 백의종군의 고행을 겪고 있을 동안, 원균은 권력을 남용해 향락에 빠져 군기를 극도로 문란시켜서 왜군의 침입을 막을 수 없는 지경이 된다. 수군의 방비가 허술한 틈을 타 왜적이 침공하자 원균은 200여 척의 전선을 거느리고 한산도에 출항했으나 칠천량해전에서 대패한다. 다시 삼도수군통제사가 된 이순신은 폐허 속에서 수군을 재건하여 전선 12척으로 왜선 133척 중 31척을 격파한 명량대첩의 공을 세운다. 왜군은 이 참패로 육상과 해상의 진출을 단념하고 다시 남해안으로 집결한다. 이때 막내아들 이면(李葂)이 전사하지만, 이순신은 국가의 위기 앞에 슬픔을 억누른다.
또한 난폭한 명나라 장수 진린(陳璘)도 이순신의 관대한 아량과 준엄한 태도에 감복하여 연합함대를 편성해 해상에 출현하는 왜선을 격파하고, 이즈음 도요토미가 사망하자 왜군들은 철군할 계획을 세운다. 명나라 원군이 도착했으나 적극적으로 전투에 임하지 않고, 오히려 고니시는 뇌물로써 명나라 장수들을 매수하여 퇴로를 모색했으나 이순신에 의해서 좌절되곤 한다. 그리고 노량해전에서 그는 200여 척의 왜선을 격파하는 전공을 세웠으나 적탄에 맞아 숨을 거둔다. 이리하여 7년간에 걸친 전란은 이순신의 전사와 함께 막을 내린다.
의의와 평가
『이순신』은 『난중일기』와 상소(上疏) 및 장계(狀啓) 등을 주석으로 제시하며 역사적 고증에 엄밀하기도 하지만 명량해전 등의 묘사와 서사에는 문학적 상상력도 적극적으로 발휘하였다. 전반적으로 소설과 논설의 면모를 종합한 전기라고 할 수 있다. 엄밀한 역사적 실증과 민족의 숙적(宿敵) 일본을 무찌르는 영웅적 서사 및 비타협적 민족주의를 담은 비평을 결합해 독자들의 각성을 촉구했다. 한국 대중매체의 형성 과정에서 역사 지식의 보급과 문학의 상상력이 어떤 역할을 했는지 잘 보여주는 사례이다.
참고문헌
원전
- 단재신채호전집편찬위원회, 『단재신채호전집』 4 (독립기념관, 2007)
논문
- 김성수, 「신채호의 영웅 전기와 근대적 글쓰기 기획—『을지문덕』의 글쓰기방식 재검토—」 (『민족문학사연구』 41, 민족문학사학회·민족문학사연구소, 2009)
- 이유진, 「‘이순신’ 문학의 역사적 전기와 그 의미—애국계몽기 〈이순신전〉을 중심으로—」 (『민족문화』 40, 한국고전번역원, 2012)
- 장경남, 「신채호의 문학과 아나키즘—신채호 역사전기의 형상화 방식과 의미—」 (『민족문학사연구』 41, 민족문학사학회·민족문학사연구소, 2009)
주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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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1
: 한글 활자로 짜서 만든 인쇄판. 또는 그것으로 찍어 만든 출판물.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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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2
: 드디어 마지막에는.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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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3
: ‘그 뒤’를 예스럽게 이르는 말.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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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4
: 그 뒤에 겪은 곤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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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5
: 오랑캐를 막은 작은 전투와 조정의 인재 구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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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6
: 죄인을 잡음.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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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7
: 전사하여 귀환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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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8
: 자(子), 묘(卯), 오(午), 유(酉) 따위의 간지(干支)가 들어 있는 해. 3년마다 한 번씩 돌아오는데, 이해에 과거를 실시하거나 호적을 조사하였다.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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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9
: 기묘한 꾀.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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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10
: 벼슬 없이 군대를 따라 싸움터로 가다.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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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11
: 여러 장수.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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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12
: 허레이쇼 넬슨, 영국의 제독(提督)(1758~1805). 미국의 독립 전쟁 때 영국 함대의 작전에 참가하고, 1798년에 나폴레옹의 이집트 원정 함대를 전멸시켰으며, 1805년에는 프랑스ㆍ에스파냐 연대 함대를 트라팔가르 앞바다에서 격파하고 전사하였다.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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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13
: 조선 시대에 둔 좌수영(左水營)의 우두머리. 품계는 정삼품이다.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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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14
: 일본의 무장ㆍ정치가(1537~1598). 일본을 통일하고 중국 대륙 침략의 야망을 실현하기 위하여 우리나라를 공격하여, 임진왜란을 일으켰으나 실패하였다.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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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15
: 화전(火箭), 화통(火筒), 화포(火砲) 따위의 화기(火器)를 통틀어 이르던 말.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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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16
: 조선 선조 25년(1592)에, 옥포 앞바다에서 이순신이 왜의 수군과 벌인 전투. 이 전투에서 조선 수군이 승리하였다.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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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17
: 조선 선조 25년(1592)에, 경남 통영의 당포 앞바다에서 이순신이 이끄는 조선 수군이 왜군과 벌인 전투. 21척의 왜선을 모두 격침시키는 대승을 거두었다.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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