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용 요약
정의
조선 전기 태조 대에서 태종 대까지 중국 명나라와 섬라곡국(暹羅斛國) 등을 왕래하였던 역관.
가계 및 인적 사항
주요 활동
1393년(태조 2) 섬라곡국에 회례사(回禮使) 일행의 통사로 갔다가 돌아오던 도중 전라도 서해 앞바다에서 왜구의 공격을 받고 포로가 되어 일본에 끌려갔다가 1396년(태조 5년)에 귀환하였다. 1405년(태종 5년)에는 명나라 사행에 통사로 갔다가 돌아왔다. 이때 명나라 예부 측에서 표문(表文)의 서술 형식 및 의례와 관련하여 지적한 내용을 태종에게 전달하였는데, 이로 인해 표문을 작성한 문서응봉사 제조와 낭청이 처벌을 받았다.
1408년(태종 8년)에는 사역원부사로서 당시 명나라가 요구한 마무역(馬貿易) 건으로 말을 인솔하여 요동에 갔다. 1409년(태종 9년)에는 명나라 사행에 통사로 다녀와서 당시 사행 과정에서 발생한 금물 수색 건에 증인으로 발언하였다. 같은 해에 지사역원사로서 마무역 건으로 말을 인솔하여 요동에 갔고, 이듬해 복귀한 후에는 요동의 군사적 정황을 보고하였다.
또한, 남성군(南城君) 홍서(洪恕)와의 소송 건으로 형조와 마찰이 생기면서 이자영의 가노 3명이 옥에 갖혔는데, 1410년(태종 10년)에 이자영이 명 사행에 가게 되면서 가노에 대한 석방 조처가 내려졌다. 그러나 이 명령을 형조에서 이행하지 않으면서 형조판서와 좌랑이 파직되는 사건이 발생하였다. 1412년(태종 12년)에는 판사역원사로 성절사 일행과 함께 베이징에 갔다가 돌아오는 길에 병사하였다.
참고문헌
원전
- 『조선왕조실록(朝鮮王朝實錄)』
논문
- 박성규, 「여말선초 통사의 직능과 그 성격」(『경주사학』 24 · 25, 동국대학교사학회, 2006)
- 백옥경, 「조선 전기 역관의 직제에 대한 고찰」(『이화사학연구』 29, 이화여자대학교 이화사학연구소, 2002)
- 백옥경, 『조선전기 역관연구』(이화여자대학교 박사학위 논문, 2000)
주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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