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통사는 세종 대 이후 사대교린의 주요 관문에 배치된 인원으로 사역원에서 파견된 역학훈도에게 외국어 교육을 받고 훈도의 소임을 보좌하였다. 소통사가 배치된 곳은 함경감영, 남병영(북청), 의주(義州), 위원(渭原), 초산(楚山), 벽동(碧潼), 창성(昌城), 황주(黃州), 평양(平壤), 만포(滿浦), 부산(釜山)이다. 그 가운데 15세기에 설치되어 폐지된 곳도 있으며, 역학훈도를 한학 여진학으로 융통하여 보내다가 몽학 여진학(청학)으로 바뀐 곳도 있다. 소통사는 향통사 또는 역학 생도라고 부르기기도 하였다.
어전통사는 칙사가 나왔을 때 문장에 뛰어나고 이문(吏文)을 해독하는 문신 1명과 중국어를 통역하는 한학역관 1명이 각각 맡았다. 사대 외교를 위해서 문신에게 이문을 익히도록 권장하였으나 실제 권장의 효과가 지속되지 않아 어전통사에 능한 문신이 적었다. 청나라에 굴복한 후에는 문신 어전통사 1인과 청학역관 1인이 어전역관으로 임명되었고 경우에 따라서는 한학역관 1인과 청학역관 1인이 함께 기용되기도 하였다.
당상통사, 상통사, 차상통사, 압물통사는 명(청)으로 가는 부경사행이나 일본으로 가는 통신사행에서 역관의 품계 또는 경력에 따라 구분된 직임이다. 사행의 규모에 따라 통사의 구분이 간략해질 수도 있었다. 장무통사는 별도 소임이 있을 때 그것을 맡는 역관이라 할 수 있고 상설직은 아니었다. 선래통사는 역관 중에서 지정하여 국경 가까운 곳에서 먼저 보내는 역관이고 선래군관과 함께 보냈다. 장무통사는 사행에서 상설직은 아니고 별도 소임이 있을 때 그것을 맡는 역관이라 하여 지정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