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록』은 1765년 문신 성대중이 통신사 서기로 일본 사행을 다녀온 후에 작성한 사행 일기이다. 사행을 준비하는 단계부터 집으로 돌아올 때까지의 일들을 일기 형태로 기록하였다. 2책의 필사본으로, 1책은 출발부터 귀환까지의 일정을 일기 형식으로 정리한 ‘사상기’와 일본에서 만난 인물에 대한 글 및 사행 관련 유의사항 등을 포함하고 있고, 2책은 여정 중의 견문과 고찰을 자세히 담은 ‘일본록’과 신유한의 『해유록』에서 발췌한 글 등을 포함한다. 이 책은 조선 지식인이 일본을 인식하고 이해한 방식을 보여 주는 귀중한 자료이다.
성대중(成大中: 1732~1809)의 본관은 창녕(昌寧)이며, 자는 사집(士執), 호는 청성(靑城)이다. 아버지는 찰방 성효기(成孝基)이다. 서얼 출신으로서 신분적 한계를 가진 인물이다. 그러나 영조의 서얼 허통(許通) 정책에 힘입어 여러 관직을 역임하였다. 그러다 1763년 계미년 영조의 명을 받고 일본으로 가는 통신사행의 서기로 발탁되었다. 당시 정사는 조엄(趙曮)이었다.
2책으로 구성된 필사본 유일본이 고려대학교 육당문고에 소장되어 있다. 1책에는 ‘사상기(槎上記)’라는 권수제가 붙어 있고, 책 말미에 ‘을유(乙酉)’라는 간기가 적혀 있어서 1765년 즈음 작성된 것으로 추정된다. 2책에는 ‘일본록(日本錄)’이라는 권수제가 붙어 있다. 2책의 뒤쪽에는 성대중보다 앞서 1719년 기해 주1에 제술관으로 다녀온 청천(靑泉) 신유한(申維翰: 1681~1752)이 지은 사행 일기를 간추려 옮긴 「청천해유록초(靑泉海遊錄鈔)」가 실려 있다.
1책에는 사행을 준비하던 단계인 1763년 8월 3일부터 이듬해 1764년 7월 10일 집으로 돌아올 때까지의 일들이 일기 형태로 간략하게 기록되어 있다. 따라서 서기 임무를 띠고 일본에 다녀오게 된 저자가 기록의 중요성을 인지하고 미리 준비한 것으로 짐작된다.
1책에는 사행을 떠나기 직전부터 복귀할 때까지의 일들이 일기 형태로 간결하게 기록되어 있다. 일기의 뒤로는 일본에서 만난 두 인물에 대해 자세하게 기록한 「서일본이재자사(書日本二才子事)」와 일본 사행에 임하는 이들이 주의해야 할 점들을 기록한 「서동사축후(書東槎軸後)」가 실려 있다.
2책은 저자 성대중 본인이 기록한 「일본록」과 신유한의 저술을 발췌해 옮긴 「청천해유록초」로 구분된다. 「일본록」에서는 사행의 이동 경로를 따라 여정 속에서 경험한 지역 및 해당 지역과 관련한 인물 · 사건 · 제도 · 문물 · 역사 등을 소상하게 적었다. 그 뒤로는 두 편의 글을 덧붙였다. 하나는 사행 도중 최천종(崔天淙)이 살해당한 사건에 대해 일본 승려 축상(笁常)이 기록한 「부축상서영목전장사(附笁常書鈴木傳藏事)」이고, 다른 하나는 울릉도 영유권 문제를 위해 싸웠던 안용복(安龍福)과 관련한 기록을 적고 자신의 논평을 덧붙인 「부안용복사(附安龍福事)」이다. 두 편의 글 모두 일본 사행과 관련이 있는 내용이다. 다시 이 뒤쪽으로는 저자보다 앞서 일본 사행을 다녀온 인물인 신유한이 남긴 『해유록(海遊錄)』 가운데 「문견잡록(聞見雜錄)」의 내용을 발췌해 수록하였다.
이 저술을 통해 사행의 이동 경로 등 사실 정보를 확인할 수 있고, 조선의 지식인이 일본을 어떤 측면에서 주목하고 이해하려 했는지 가늠할 수도 있다. 조선 후기 사행을 다녀온 인물이 직접 기록한 견문록으로서 큰 가치가 있다고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