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에 유교적 제사는 인간이 ‘신’을 맞이하여 받들어 대접한 뒤 다시 보내드리는 과정으로 구성되는데, '준비-영신(迎神)-궤식(饋食)-헌작(獻爵)-영신(送神)-정리'의 순서로 정형화된 제례 의식 절차로 표현된다. 이러한 절차 가운데 신을 맞이하여 음식을 올린 뒤 술을 담은 제기를 신위 앞에 올리는 절차를 가리켜 작헌례라고 한다.
조선의 사전(祀典) 체제에서 가장 높은 등급인 대사(大祀)에 속한 종묘 제향의 작헌례 절차를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국왕이 친행하는 종묘제례(宗廟祭禮)에서 작헌례는 '초헌-아헌-종헌'의 삼헌례로 이루어졌다.
초헌례는 국왕이 행하였다. 초헌에서 신위 앞에 바치는 작(爵)에 담는 술은 예제(醴齊)를 사용하였다. 예제는 즙과 찌꺼기가 섞인 술이다. 술을 올릴 때에는 국왕이 먼저 나아가 진폐찬작관(進幣瓚爵官)이 항아리에 담긴 술을 떠내어 작에 따르는 것을 살펴본 후 신실로 들어가 상 앞에 무릎을 꿇고 집사가 바치는 작을 받아 올렸다. 이어서 왕비 신위 앞에도 동일한 절차로 작을 올렸다. 초헌 뒤에는 대축(大祝)이 축문을 읽는 절차가 있었다. 이는 신에게 제물을 바치는 말씀을 올리는 행위로 신과 인간 사이의 대화가 이루어짐을 의미하였다.
아헌례는 왕세자가 행하며, 초헌과 같은 순서로 예를 행하였다. 아헌에서의 술은 앙제(盎齊)를 사용하는데, 앙제는 아주 엷은 푸른빛이 도는 술이다. 종헌례는 영의정이 행하는데, 영의정이 못 하는 경우에는 그 다음 차서의 관원이 대신하였다. 절차는 아헌과 동일하며 종헌에서의 술은 청주(淸酒)를 사용하였다. 종헌이 시작될 때 칠사헌관(七祀獻官)과 배향공신헌관(配享功臣獻官)도 신위 앞에 나아가 작헌례를 행하였다.
종묘 정전의 신위에 대한 삼헌례와 달리 칠사와 배향공신에 대해서는 각 신위마다 한 번씩만 작헌례를 행하였는데, 이러한 형식을 단헌(單獻)이라고 표현한다. 칠사와 배향공신은 국가의 사전체제에서 소사(小祀)에 속하였기 때문에 급을 달리한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마찬가지로 동일한 공간에서 이루어지는 제사라도 사시(四時)와 납일(臘日)에 행하는 제향에서는 삼헌례가 행해진 반면, 삭망제(朔望祭), 기고제(祈告祭)의 경우에는 단헌이 이루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