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용 요약
정의
고려 후기, 몽골의 제2차 침입(1232) 때 처인성에서 승장(僧將) 김윤후가 적장 살례탑을 사살한 전투.
배경 및 발단
그러자 그해 몽골의 장수 살례탑(撒禮塔)[몽골명: 살리타이, 사르타이]가 고려의 북계(北界: 현, 평안도)에 침입하여 서경(西京)의 반적(叛賊) 홍복원(洪福源)과 합세하여 고려를 위협하였다. 몽골의 제2차 침입이 개시된 것이다. 살례탑은 고려가 강화도(江華島)로 도읍을 옮긴 것을 꾸짖고, 국왕이 육지로 나올 것을 요구하였으나 고려는 이에 응하지 않았다.
경과 및 결과
그때 마침 난을 피하여 처인성에 들어와 있던 백현원(白峴院)의 승려 김윤후(金允侯)가 함께 입보해 있던 처인부곡민(處仁部曲民) 및 승려들을 지휘하여 살례탑을 사살하였다. 그때가 1232년 12월 16일의 일이었다. 장수를 잃은 몽골군은 전의를 상실하여 부장 철가(鐵哥)의 인솔로 곧 북으로 철수하였다.
의의 및 평가
처인성 승첩(勝捷)의 결과, 처인부곡은 처인현(處仁縣)으로 승격되었다. 김윤후는 상장군(上將軍)에 임명되었으나 끝내 사양하여 섭랑장(攝郎將)이 되었고 이후 1250년(고종 37) 충주산성(忠州山城) 방호별감(防護別監)으로 파견되어 야굴(也窟)[몽골명: 예쿠, 에쿠]의 몽골군을 물리쳤다.
참고문헌
원전
- 『고려사(高麗史)』
- 『고려사절요(高麗史節要)』
단행본
- 윤용혁, 『여몽전쟁과 강화도성 연구』 (혜안, 2011)
논문
- 강재광, 「대몽전쟁기 처인성승첩의 성격과 역사적 의미」 (『한국중세사연구』 53, 한국중세사학회, 2018)
- 김호준, 「고려 대몽항쟁기 김윤후장군의 3차례 승전의 의의」 (『백산학보』 114, 백산학회, 2019)
- 윤용혁, 「몽고의 2차 침구과 처인성승첩」 (『한국사연구』 29, 한국사연구회, 1980)
주석
-
주1
: 싸움에서 이김. 우리말샘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으로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 사실과 다른 내용, 주관적 서술 문제 등이 제기된 경우 사실 확인 및 보완 등을 위해 해당 항목 서비스가 임시 중단될 수 있습니다.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공공저작물로서 공공누리 제도에 따라 이용 가능합니다.
- 백과사전 내용 중 글을 인용하고자 할 때는 '[출처 : 항목명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과 같이 출처 표기를 하여야 합니다.
- 미디어 자료는 자유 이용 가능한 자료에 개별적으로 공공누리 표시를 부착하고 있으므로 이를 확인하신 후 이용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