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익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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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사
제도
조선시대 원종공신(原從功臣) 및 그 자손을 위한 특수 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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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조선시대 원종공신(原從功臣) 및 그 자손을 위한 특수 군대.
내용

1456년(세조 2) 원종공신과 자손을 우대하기 위한 관부(官府)로 충익사(忠翊司)가 설치된 바 있다. 이 관부는 공해전(公廨田)을 받아 수세(收稅)해 운영되었다. 1466년에 충익부(忠翊府)라 개칭되어 종2품 아문으로 승격하고 도사(都事) 2인을 두어 운영하였다.

그러나 이 충익부가 관장하는 일이 없다고 하여 1555년(명종 10) 공신을 위한 충훈부(忠勳府)에 합속(合屬)되고 무반(武班) 계열의 충찬위(忠贊衛)만 남게 되었다. 그러다가 1620년(광해군 12) 4월에 충익부가 다시 설치되었다.

이는 충익부가 국가 초기의 원종공신과 자손을 위한 관부로 설치되었으나 그 뒤 원종공신의 수가 줄고 그 자손도 녹권(錄券) 등이 없어짐으로써 도중에 위에서 보는 바와 같이 폐지되었던 것이다.

그러나 선조 때에 이르러 왜란을 겪으면서 광국(光國) 이하 세 차례나 원종공신이 양산되었다. 또한 광해군 때에도 국가적인 혼란을 수습하는 과정에서 네 차례나 양산되어 원종공신만 수천 명에 이르게 되었다.

이에 그들의 귀속처(歸屬處)가 필요하게 되자 충익부를 다시 설치하고 충훈부 당상(堂上) 1인을 유사(有司)로 하고 도사 1인으로 그 일을 전관(專管)하도록 하였다. 이 충익부의 관장 아래 선조 때의 광국 이하의 여러 원종공신의 생존자 명단을 한 책으로 만들었다.

여기에는 본인의 이름과 본관 및 거주지를 써넣게 하고, 이들을 충익위라 하여 그 수에 따라 분번(分番), 작대(作隊)하고 자기 스스로 군량을 갖추어 충익장(忠翊將)의 영속 아래 창경궁에 입직하도록 하였다.

그러나 여기에는 사대부·유식인(有識人)·생원·진사·유학(幼學) 등 공로 거업자(擧業者)와 삼의사(三醫司 : 내의원·전의감·혜민서의 합칭)의 서리(書吏)·시임사인(時任仕人) 이외의 공사천(公私賤)·신량인(新良人) 및 각종 군사군공자·납속영직인(納粟影職人) 등을 분속시켰다. 법전에는 이들이 12번으로 나뉘어 숙위에 종사하되 기타의 잡역을 면제한다고 하였다.

따라서, 후기의 충익부는 충익위를 관장하는 관부이며, 충익위는 사실상 초기의 원종공신이나 자손의 소속처가 아니라 선조·광해군 때에 발생한 원종공신이나 자손을 위해 설치된 것으로 생각된다. 이들 자손은 3대에 한하였다.

이 같은 충익위의 설치는 기존에 있어 오던 충찬위와 거의 같은 것으로 파악된다. ≪만기요람 萬機要覽≫이나 ≪비변사등록 備邊司謄錄≫ 등에 의하면 충찬위는 원종공신의 지파(支派)로 병조 유청군(有廳軍)에 속하고, 충익위는 원종공신의 장파(長派)가 이에 속한다고 하고 있다.

그러나 결국 국초부터의 원종공신 자손은 충찬위, 선조 이후에 발생한 원종공신과 자손은 충익위에 속한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이들 충익위는 충익부가 이조 아문이기 때문에 이조에 분속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충익부 자체가 충훈부에 속했다가 병조에 속하는 등 몇 차례 그 귀속처가 바뀌다가 다시 충훈부에 합속됨으로써 충익위 자체는 병조에 속해 있으면서도 충훈부의 관할 아래 있었다.

뒤에 이 충익위에 속해 있던 원종공신의 자손들은 포(布) 1필을 내어 잡역을 면제받았으며, 이 포로써 충훈부를 운영하였다. 1894년(고종 31) 갑오개혁 때 관제 개혁으로 폐지되었다.

참고문헌

『비변사등록』
『수교집록』
『신보수교집록』
『만기요람』
『대전회통』
『육전조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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