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국유사』 흥법(興法) 제3 아도기라조(阿道基羅條)에 의하면, 신라에 불교를 전래한 아도(我道)는 고구려인인 그 어머니로부터 신라의 서울에는 전불시대의 일곱 개의 가람터가 있으며, 앞으로 3,000개월이 지나면 성왕(聖王)이 나와 크게 불교를 일으키게 될 것이니 그곳에 가서 불교를 전파하라는 당부를 받는다.
그 일곱 곳이란 ① 금교(金橋) 동쪽 천경림〔天鏡林:지금의 興輪寺〕, ② 삼천기〔三川岐:지금의 永興寺〕, ③ 용궁(龍宮)의 남쪽〔지금의 皇龍寺〕, ④ 용궁의 북쪽〔지금의 芬皇寺〕, ⑤ 사천(沙川)의 끝〔지금의 靈妙寺〕, ⑥ 신유림〔神遊林:지금의 天王寺〕, ⑦ 서청전〔婿請田:지금의 曇嚴寺〕이다.
『삼국유사』에서는 그곳이 모두 전불시대의 가람터요, 불법(佛法)이 길이 유행하던 땅이므로 이곳에 가서 불교를 전파하면 불교의 기운이 동으로 향할 것이라고 기록하고 있다. 이 일곱 개의 가람터를 전불시대의 가람이라고 한 점에 비추어 보면, 이 절터들은 과거칠불(過去七佛)인 비바시불 · 시기불 · 비사부불 · 구류손불 · 구나함모니불 · 가섭불 · 석가모니불 등의 절터를 뜻하기도 한다.
이를 뒷받침하는 기사로서 『삼국유사』 탑상(塔像) 제4 가섭불연좌석조(迦葉佛宴坐石條)에는 이 칠처 가람터 중의 하나인 용궁 남쪽에 황룡사가 창건되고, 그 불전(佛殿)의 후면에는 과거칠불 중의 하나인 가섭불의 연좌석이 있다고 주장하였다.
7, 8세기에 신봉되었던 이 칠처 가람설에 의거하여 신라인은 그들이 염원하던 불국토가 먼 곳에 있는 것이 아니라 자기들이 살고 있는 그곳이 바로 부처가 설법하던 곳이라고 확신함으로써 그들의 신앙은 더욱 열렬해졌고, 그곳에 불국을 재현해 보려는 노력이 더욱 굳건해지게 된 것이다. 이 칠처 가람설은 그 뒤의 오대산신앙(五臺山信仰) 및 금강산보살주처신앙(金剛山菩薩住處信仰) 등과 함께 이 땅이 본래 불국토였다는 신념을 신라인에게 불어넣어 자부와 긍지를 가지고 불교에 귀의하게 하는 중요한 구실을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