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중항일동맹회

  • 역사
  • 단체
  • 일제강점기
1935년 11월 조선혁명군 부대가 중국의 왕봉각 부대와 연합하여 조직한 한중 합작 항일운동단체.
이칭
  • 이칭중한항일동맹회
단체
  • 상위 단체조선혁명군
  • 설립 시기1935년 11월
  • 설립자한검추|고이허|왕펑거[王鳳閣]
  • 설립지중국 요녕성 집안현
  • 해체 시기1937년 3월
집필 및 수정
  • 집필 2021년
  • 윤상원 (전북대학교 역사학과)
  • 최종수정 2022년 09월 24일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으로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내용 요약

한중항일동맹회는 1935년 11월 조선혁명군(朝鮮革命軍) 부대가 중국의 왕펑거[王鳳閣] 부대와 연합하여 조직한 한중 합작 항일운동단체이다. 조선혁명군은 한중항일동맹회로부터 적지 않은 무기와 식량을 지원받아 항전 역량을 강화하였고, 이를 기반으로 국내 진입 작전을 벌이고 군자금을 모집하였다.

정의

1935년 11월 조선혁명군 부대가 중국의 왕봉각 부대와 연합하여 조직한 한중 합작 항일운동단체.

변천 및 현황

1935년 일제의 토벌 정책과 초토화 작전으로 어려운 처지에 빠진 조선혁명군 제1사(師) 한검추(韓劍秋) 부대가 그해 9월 20일 중국 요녕성(遼寧省) 집안현(輯安縣)에서 요녕민중자위군(遼寧民衆自衛軍)의 명맥을 유지하고 있던 왕펑거 부대와 회합하고 공동투쟁을 결의하여, 11월 조직된 단체이다.

한중항일동맹회의 정치위원회 위원장은 당시 조선혁명군정부(朝鮮革命軍政府)의 수반이던 고이허(高而虛)가 맡았고, 군사위원회 위원장은 왕펑거, 군의 총사령관은 한검추가 선임되었다. 전체 병력은 1,150명 정도로, 이 중 한검추 산하 조선혁명군 부대가 100여 명이었다.

한중항일동맹회는 정강(政綱)에서 "본 동맹회는 일본 제국주의를 타도하고, 중국 동북 실지를 회복하며, 조선 독립을 목적으로 함"을 명시하여 투쟁목표를 밝혔다. 동맹회를 통해 조선혁명군은 왕펑거 부대로부터 적지 않은 무기와 식량을 지원받을 수 있었다.

또한, 일부 참모와 전투원에 중국인을 편입시켜 한중 합작의 의미를 확대하고 항전 역량을 강화할 수 있었다. 이를 통해 조선혁명군은 국내 진입 작전을 전개하여 일제의 치안을 교란하고 군자금을 모집하였다.

1936년 6월, 장진봉(張珍奉) 등 10여 명의 소부대가 평안북도 초산에 진공하였고, 9월에는 압록강 연안의 위원(渭原) · 벽동(碧潼) 파출소를 기습하였다. 10월에는 정운준(鄭雲準) 등 5명의 대원이 벽동의 한 파출소를 기습 공격하여 순사 4명을 사살하는 전과를 거두기도 하였다.

한중항일동맹회는 일본 관동군(關東軍)과 만주국(滿洲國) 군경의 공세가 강화되면서 1936년 말부터 1937년 초까지 왕펑거 부대가 거의 궤멸되고, 1937년 3월 왕펑거가 체포 · 처형됨으로써 해체되고 말았다.

참고문헌

  • 단행본

  • - 장세윤, 『1930년대 만주지역 항일무장투쟁』(독립기념관 한국독립운동사연구소, 2009)

  • - 신주백, 『1920-30년대 중국지역 민족운동사』(선인, 2005)

주석

  • 주1

    : 부대 편성 단위의 하나

  • 주2

    : 정부 또는 정당 같은 정치 집단이 내세운 정책의 큰 줄기 우리말샘

  • 주3

    : 일제 강점기에, 중국을 침략하기 위하여 관둥저우[關東州]에 주둔했던 일본 육군 부대를 통틀어 이르던 말. 1905년에 남만주 철도의 권익을 보호한다는 구실로 설치된 후, 일본의 만주 침략의 중추적 구실을 하다가 1945년에 소련군의 만주 침공으로 와해되었다. 우리말샘

  • 주4

    : 1932년에 일본이 중국 동북부 및 네이멍구[內蒙古] 자치구(自治區) 동북부에 세웠던 괴뢰 국가. 청나라의 마지막 황제 선통제(宣統帝) 푸이[溥儀]를 집정(執政)으로 맞아들이고 신징[新京]을 수도로 하여 건국하였다. 일본의 군사 기지로서 관동군이 무단 통치하였으나, 일본이 제2차 세계대전에서 패배하자 소멸하였다.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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