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경북도 경성 출생. 고향에서 중등과정을 마치고 상경하여 중앙불교전문학교(中央佛敎專門學校)에 입학하였다. 이 때 서정주(徐廷柱)와 김동리(金東里)를 알게 되어 문학에 입문한 것을 계기로 ‘시인부락(詩人部落)’ 동인이 되었다.
가정형편이 어려워 학교를 중퇴하고 만주로 건너가 소학교 훈도시험에 합격하여 도문공립백봉우급학교(圖們公立白鳳優級學校)에 근무하기도 하였다. 광복 당시 고향에 머물러 있었으나, 심한 정신착란증으로 시달리다가 사망하였다.
살았을 때 시집은 출간하지 못했고, 동인지 『시인부락(詩人部落)』과 『자오선(子午線)』에 「해바래기의 비명(碑銘)」·「형화(螢火)」·「홍도(紅桃)」·「그애」·「무서운 밤」·「조개비」·「해골(骸骨)의 추억(追憶)」·「회상(回想)의 방(房)」·「유폐행(幽閉行)」·「손있는 그림」·「부친후일담(父親後日譚)」·「성야(星夜)」·「구화행(求花行)」·「신기루(蜃氣樓)」·「교상(橋上)의 소녀(少女)」·「자전차상(自轉車上)의 소년(少年)」·「어떤 애사략(愛史略)」 등 17편이 실려 있는데, 이 중 「해바래기의 비명」을 제외하고는 모두 ‘소년행(少年行)’시편이다.
그밖에 『동아일보』 신춘문예당선작 「마음」(1940.1.)과 「개아미와 같이」(인문평론, 1940.10.) 등이 있다. 내 무덤 앞에 빗돌을 세우지 말고 노란 해바라기를 심어달라는 「해바래기의 비명」은 그의 대표작으로 문학사에 자주 인용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