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용 요약
해룡창은 고려시대에 지금의 전라남도 순천시 홍내동, 오천동 지역에 설치되었던 조창(漕倉)이다. 고려시대 13조창 중의 하나로 전라남도 순천시 홍내동 해룡산 일대에 있었다. 추수가 끝난 후 전라도 동남부 지역의 조세를 모아 두었다가 2월에 발송을 시작하여 4월까지 마치도록 하였다. 정종 때 전국 조창에 조운선을 설치할 때 1,000석을 적재할 수 있는 초마선 6척이 설치되어 개경까지의 조세 운동을 담당하였다. 지금도 해룡산 정상부와 남서쪽 평지에는 당시에 사용되었던 것으로 추정되는 기와편과 청자편이 종종 목격된다.
정의
고려시대에, 지금의 전라남도 순천시 홍내동, 오천동 지역에 설치되었던 조창(漕倉).
제정 목적
내용
해룡창의 위치는 순천만의 안쪽 깊숙한 곳으로 순천 동천(東川)과 이사천(伊沙川)이 합류하는 지점에 해당한다. 현재는 농경지로 개간되어 있으나, 과거 고려시대에는 바닷물이 드나들었던 곳이었다. 순천시 홍내동과 오천동 지역의 경계에 위치한 해룡산(海龍山)에는 현재도 해룡산성(海龍山城: 홍내산성)의 터가 남아 있다. 해룡산성은 후삼국시기 순천 지역의 호족(豪族)이자 견훤(甄萱)의 사위였던 박영규(朴英規)와 관련된 전승이 전해지는 곳으로도 유명하다. 조선 전기에 편찬된 지리서인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에 따르면, 박영규가 해룡산신(海龍山神)이 되었으며 해룡산에는 해룡산사(海龍山祠)가 있었다고 기록되어 있다. 해룡산사는 박영규를 모시던 사당이었을 것이다. 또한 『신증동국여지승람』에는 해룡산 토성(土城) 터가 예전에 조세를 거두어 바다를 통해 운반하던 곳인 해룡창이 있던 곳이라 서술되어 있다. 그러므로 고려시대 해룡산성은 해룡창의 창고 시설을 관장하고 보호하는 시설로서 기능하였을 것이다.
『고려사(高麗史)』에는 정종(靖宗) 때(1034~1046) 전국 각 조창에 배치할 조운선의 숫자를 정하면서, 해룡창에는 1척 당 1,000석의 곡식을 실을 수 있는 초마선(哨馬船) 6척을 두었다고 한다. 해룡창에 모인 세곡은 남해안과 서해안을 따라 개경의 경창으로 운송되었다. 해룡창을 비롯한 13조창 지역에 거주하는 주민들은 조창을 드나드는 세곡의 보관 및 운송과 관련된 실무를 담당했을 것이며, 13조창에는 판관(判官)이 임명되어 각 조창에서의 세곡 운송과 보관을 관리, 감독하였다. 인종(仁宗) 때(1122~1146년) 개정된 외관(外官)의 녹봉(祿俸) 규정에 따르면, 13창의 판관에게는 20석의 녹봉이 지급되었다.
변천 사항
의의 및 평가
참고문헌
원전
- 『고려사(高麗史)』
- 『세종실록(世宗實錄)』 지리지(地理志)
-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
단행본
- 국사편찬위원회 편, 『한국사: 고려 전기의 경제구조』 14(탐구당, 1993)
- 한정훈, 『고려시대 교통운수사 연구』(혜안, 2013)
- 문경호, 『고려시대 조운제도 연구』(혜안, 2014)
논문
- 문경호, 「여말 선초 조운제도의 연속과 변화」(『지방사와 지방문화』 17-1, 역사문화학회, 2014)
- 변동명, 「해룡산성과 순천」(『전남사학』 19, 전남사학회, 2002)
- 정요근, 「고려~조선전기 조창의 분포와 입지」(『한국사학보』 57, 고려사학회, 2014)
- 한정훈, 「조선 건국기 조운체제의 정비와 그 의미」(『진단학보』 120, 진단학회, 2014)
- 六反田豊, 「高麗末期の漕運運營」(『久留米大學文學部紀要』 國際文化學科編 2, 1993)
주석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으로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 사실과 다른 내용, 주관적 서술 문제 등이 제기된 경우 사실 확인 및 보완 등을 위해 해당 항목 서비스가 임시 중단될 수 있습니다.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공공저작물로서 공공누리 제도에 따라 이용 가능합니다.
- 백과사전 내용 중 글을 인용하고자 할 때는 '[출처 : 항목명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과 같이 출처 표기를 하여야 합니다.
- 미디어 자료는 자유 이용 가능한 자료에 개별적으로 공공누리 표시를 부착하고 있으므로 이를 확인하신 후 이용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