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용 요약
안흥창은 고려시대에 전라도(현 전북특별자치도) 부안군 지역에 설치되었던 조창(漕倉)이다. 고려시대에는 전국에 13조창을 설치하고 조운을 통하여 각 지방의 세곡을 개경으로 운반하였다. 안흥창은 부안의 곰소만 연안에 위치하여 전라도 고부와 그 주변 지역의 세곡을 모아 서해안을 따라 개경의 경창으로 운송하는 기능을 담당했다. 『고려사』에 따르면 1척당 1000석의 곡식을 실을 수 있는 초마선 6척을 두었다고 한다. 판관이 세곡 운송과 보관을 관리, 감독하였는데 녹봉이 20석 지급되었다. 안흥창의 폐쇄 시기는 분명하지 않지만 고려 말기로 추정된다.
정의
고려시대에 전라도(현, 전북특별자치도) 부안군 지역에 설치되었던 조창(漕倉).
개설
내용
안흥창의 수세(收稅) 구역에는 전라도 고부(古阜)와 그 속군 · 속현(屬郡 · 屬縣) 등이 중심이 되었을 것이다. 안흥창은 현 전북특별자치도 부안군 보안면 유천리 · 영전리 일대로 비정된다. 선창천이 곰소만으로 유입되는 지점이며, 예로부터 유포(柳浦)라 불리는 큰 포구가 있었던 곳이다. 유포는 조선 전기의 지리서인 『신증동국여지승람』에도 기록될 정도로 유서 깊은 포구였으며, 유포의 바로 동쪽에는 20세기 전반까지도 포구로 크게 번성했던 줄포가 있다. 유천리 · 영전리 일대는 고려시대 보안현(保安縣)의 읍치와도 거리가 멀지 않고 근방에 토성(土城)의 흔적이 남아 있어, 조창의 입지를 두루 갖추고 있다.
『고려사』에는 정종(靖宗) 때(1034~1046) 전국 각 조창에 배치할 조운선의 숫자를 정하면서, 안흥창에는 1척 당 1,000석의 곡식을 실을 수 있는 초마선(哨馬船) 6척을 두었다고 한다. 안흥창에 모인 세곡은 서해안을 따라 개경의 경창으로 운송되었다. 안흥창을 비롯한 13조창 지역에 거주하는 주민들은 조창을 드나드는 세곡의 보관 및 운송과 관련된 실무를 담당했을 것이며, 13조창에는 판관(判官)이 임명되어 각 조창에서의 세곡 운송과 보관을 관리, 감독하였다. 인종 때(1122~1146년) 개정된 외관(外官)의 녹봉 규정에 따르면, 13창의 판관에게는 20석의 녹봉이 지급되었다.
변천과 현황
의의와 평가
참고문헌
- 『고려사(高麗史)』
- 『세종실록(世宗實錄)』 지리지(地理志)
-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
- 『고려시대 조운제도 연구』(문경호, 혜안, 2014)
- 『고려시대 교통운수사 연구』(한정훈, 혜안, 2013)
- 『한국사: 고려 전기의 경제구조』 14(국사편찬위원회 편, 탐구당, 1993)
- 「고려시대 안흥창과 부안 청자의 운송방식」(한정훈, 『도서문화(島嶼文化)』 48, 국립목포대 도서문화연구원, 2016)
- 「고려~조선전기 조창(漕倉)의 분포와 입지」(정요근, 『한국사학보』 57, 고려사학회,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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