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용 요약
홍치는 조선 전기 성종~연산군 대 후릉참봉을 지낸 학자이다. 성리학 공부에 관심이 많았고, 연산군 대 나라가 혼란스럽고 어려워지자 상소를 통해 바로잡고자 하였으나 주변의 만류로 그만두었다. 중종반정 이후 관직에 나아갈 기회가 있었지만 사양하고, 학자들과 교유하면서 학문에 정진하였다.
정의
조선 전기 성종~연산군 대 후릉참봉을 지낸 학자.
가계 및 인적 사항
학문과 저술
중종반정 이후 관직에 나아갈 기회가 있었지만, 결국 응하지 않고 유명한 학자들과 교유하면서 생활하였다. 홍치와 교유했던 유명한 인물 중에는 무오사화(戊午士禍) 때 장형(杖刑)을 받다가 죽은 최보(崔溥)와 기묘명현(己卯名賢) 중 한 명인 이목(李穆) 등이 있다.
저술로는 『심학장구집주대전(心學章句集註大全』 상편 · 하편이 있다. 지금도 홍치가 머무르면서 생활하였던 일송정이 전라남도 화순에 보존되어 있다. 다만, 홍치에 관한 기록이 매우 제한되어 있고, 『심학장구집주대전』은 신뢰성에 대한 논란이 있다. 후속 연구를 통해 관련 내용을 명확하게 규명할 필요가 있다.
참고문헌
원전
- 『풍산홍씨군수공파보(豊山洪氏郡守公派譜)』
단행본
- 『심학(心學)』(풍산홍씨능주문중, 19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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