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39년 7월『문장(文章)』(제7집) 임시 증간호(增刊號)에 발표되었다. 나폴레옹의 최후를 표현한 작품으로, 고도(孤島)에 추방되어 마지막 죽음에 직면한 영웅의 고통이 고통으로서보다는 극적인 비장미(悲壯美)로 승화되어 있다.
이효석은 초기에 경향문학(傾向文學)의 동반작가(同伴作家)로 출발하였으나 1930년대 중반부터 자연의 아름다움과 인간의 원초적인 내면세계를 성(性)의 문제로 해석한 작품을 발표하기 시작하였다. 1938년 이후에는 한편으로 서구적인 분위기를 풍기는 작품세계를 지향하여 주의를 끌었다.
특히, 「황제」는 서구적인 동경과 향수가 두드러진 작품인데, 일물일어식(一物一語式)의 분석적인 표현법 대신 시적 구문을 사용하고 있어 이효석의 후기 문학의 특질을 잘 나타내고 있다. 임화(林和)는 당시의 창작평을 통해 “「황제」는 인간적 위대성에 대한 아름다운 로맨티시즘이 높게 물결치는 작품”이라 평가한 바 있다.
작중 인물 ‘나’의 체험적 일대기를 최후의 순간에 회상적 수법으로 1인칭 화자가 주로 압축·요약하여 들려준다. 즉, ‘서술하는 나’와 ‘체험하는 나’가 일치하는 소설이다. 이것은 슈탄첼(Stanzel, F. K.)에 의하면 ‘의사자서전적(擬似自敍傳的)’ 화자가 존재하는 순수한 1인칭 소설에 속한다.
“오늘이 올 것을 마음속에 생각하고 있었고 기다리고 있었다. 내 무엇을 모르랴. 내 무엇을 겁내랴. 차라리 이 불측한 곳을 한시바삐 떠나고 싶다. 시저도 결국 세상을 떠나고야 말지 않았던가. 나 역시 그의 뒤를 따르는 것이다. 내 세상을 떠나면 다시 구라파로 돌아가 샹제리제를 거닐고 세느강가를 헤매이며 부하들과 만날 것이다.” 여기에는 만물은 움직이고 변화한다는 우주의 법칙에 굴복한 주인공의 비장한 고백이 들어 있다.
그러나 인생의 비참함이나 고통의 형식으로 나타나 있지 않고 정신적 미의식으로서 표현되어 있다. 이 말은 「황제」가 그와 같은 고통과 비참함을 행복한 것으로 미화했다든지, 현실에서 고의로 눈을 회피한 작품이라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다만 어떠한 비참함이나 고통마저도 그것을 정신적으로 승화시키고 있다는 것이다. 임화가 「황제」를 로맨티시즘이라 평한 것도 바로 이 점을 두고 한 말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