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30년 『대중공론(大衆公論)』에 발표되었다. 또한 1931년 동지사(同志社)에서 같은 제목으로 출간한 그의 첫 단편집에 「도시와 유령」·「기우(奇遇)」·「행진곡」·「추억」·「상륙」·「북국사신(北國私信)」·「북국점경(北國點景)」 등의 단편과 함께 수록되었다.
「노령근해」는 그의 초기 소설의 특징으로 불리는 동반작가(同伴作家)라는 명성과 결부되는, 하나의 대명사로 간주되기도 한다. 이 작품은 「상륙」과 「북국사신」과 함께 연작 형식을 취한 것으로 그의 초기 대표작으로 거론된다.
이 작품의 서술은 3인칭 전지적 시점(全知的視點)에 의하여, 마지막 항구를 떠나 연해주(沿海州)에 있는 소비에트 러시아로 향하는 국제여객선을 배경으로 하여 각양각색의 인생축도를 조명한다.
거기에는 고기와 과일과 향기로운 술로 배를 채우며, 주권(株券)과 미두(米豆) 이야기로 흥취에 젖은 일등실의 상인들이 있고, 사냥개 마냥 냄새를 맡으며 두리번대는 일본 경찰의 고등계형사도 있다.
갑판 아래 어두운 기관실에서는 적도의 무더위를 무색하게 하는 용광로 같은 아궁이 앞에서 녹초가 되도록 혹사당하는 화부의 동물적 정경이 펼쳐진다. 그리고 그 옆 석탄 창고 속에는 일본 경찰의 감시를 피해 간신히 숨어서 국외로 탈출을 시도하는 젊은 항일투사가 숨어 있다.
삼등 선실에는 돈을 많이 벌겠다는 막연한 기대를 가지고 일터를 찾아가는 자, 아들의 뼈라도 추리러 간다는 노파, 일확천금의 꿈을 안고 떠나는 항구의 창녀, 러시아어 단어장을 들고 노상 중얼거리는 청년, 배웅하는 자 없이 떠나면서 어쩌면 이것이 조국과의 마지막 이별일지도 모른다는 감상으로 눈물에 젖어 있는 처녀 등이 등장한다.
이들 모두는 ‘부자도 없고 가난한 사람도 없는 다같이 살기 좋은 나라’를 찾아 고달프게 항해하는 자들이다. 석탄 창고 속에 숨어서 밀항을 꾀하던 청년이 살롱의 급사인 김군의 도움으로 드디어 ‘꿈에 그리던 그 나라’로 상륙하여, 거기서 기다리기로 한 로만 박과 접선하는 데 성공하는 과정이 「상륙」에서 다루어진다.
신흥 국가 소비에트에서 일어났던 ‘그’의 사생활의 일부를 「북국사신」에서 계속 취급한 것을 감안한다면 「노령근해」의 주인공도 석탄 창고 속의 청년 ‘그’임에 틀림없으나, 이 작품만 볼 때에는 특정한 주인공이 설정되어 있지 않다.
카메라의 초점을 여기저기에 갖다비추는 몽타주식 수법에 의한 정황이나 분위기의 설정은 장편소설의 제시부(exposition)와 같은 인상을 준다.
의도적으로 설정된 일등 선실의 부르주아적 유산계급의 흥청댐과, 삼등 선실 프롤레타리아들의 밑바닥 인생과의 대조적 정황설정은 당대 삶의 축도를 상징적으로 묘사하려고 했다고 하더라도, 하나의 소설문학으로서의 성공 여부에는 상당한 의문의 여지가 있다.
특히, 작품 전체를 지배하는 톤(tone), 즉 소설 속에 등장하는 러시아인에 대한 영웅적 대접과 호의에 찬 묘사는 작가의 관념의 과잉 노출을 보여준다.
일제의 압정으로 대다수의 민중들이 삶의 뿌리를 잃은 채 방황하고 신음하던 시대에, 때마침 지식인들 사이에 일기 시작한 프롤레타리아 혁명이론은 비단 마르크스주의 노선에 심취된 자뿐 아니라, 조국의 광복을 지상의 목표로 여기고 있던 당대 여건으로 볼 때 상당히 절실한 현안문제로 부각되었을 가능성이 짙다.
그러므로 예술보다도 이데올로기의 격앙된 주창을 높이 샀던 카프(KAPF: 조선프롤레타리아예술동맹)의 입장에서는 작품의 예술적 수준보다는, 그들의 행동강령이나 이념과 동궤(同軌)라고 생각한 이효석과 유진오(兪鎭午)를 동반작가라 칭하고 그들 편으로 묶으려는 저의를 가졌음을 확인하게 된다.
「노령근해」는 주제론적 측면에서 볼 때, 당대 지배적이었던 문예사조와의 관련 속에서 그 사적 의의(史的意義)를 찾을 수 있다. 또한, 작가론적 입장에서도 이효석의 사상 및 작풍(作風)과 그 방황의 궤적을 추적하는 데 중요한 이정표로서의 가치를 인정할 수 있다.
그러나 이 소설은 장면이나 어떤 정황의 묘사는 있지만, 그 모든 것을 유기적으로 얽어가며 진행시키는 서사적 구조가 약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