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주금석리유적(黃州金石里遺蹟)은 황해북도 황주군 금석리에 있는 낙랑군 설치 직후 조영된 덧널무덤이다. 덧널무덤 바닥에서 쇠뇌 방아쇠, 세형동검, 청동 고리 등 각종 청동기를 비롯하여 철제 차축두, 쇠투겁창, 단조 쇠도끼 등 철기와 함께 재지적 성격이 강한 승문타날 짧은목항아리가 출토되었다. 출토 유물로 보아 피장자는 재지의 상위계층 인물이었을 것으로 짐작된다. 몇몇 청동기가 비교적 이른 시기의 것으로 볼 수 있어 낙랑군이 설치된 직후에 조영되었던 것으로 평가된다.
황주금석리유적은 황해북도 황주군 금석리에 자리한다. 금석리의 한 과수 농장 안에서 고분이 발견되어 발굴 조사하게 되었다. 발굴 조사 결과 무덤의 구조는 널방이 따로 마련되지 않은 홑무덤 형태의 덧널무덤이었다. 그러나 조사자들이 현지에서 조사할 당시에는 이미 둘레를 모두 파 버린 뒤였으므로 출토 유구의 성격은 알 수가 없었다.
덧널무덤의 바닥을 조사한 결과 많은 수의 부장(副葬) 유물이 확인되었다. 우선 청동기로는 쇠뇌의 방아쇠 · 세형동검(細形銅劍) · 일산살대투겁 · ‘乙’ 자 모양의 동기(銅器) · 수레멍에 부속 동기 · 삿갓 모양 동기 · 청동 고리 등이 있다.
철기로는 철제 차축두(車軸頭)와 철사, 그리고 쇠투겁창과 쇠창이 단조 쇠도끼 2점과 함께 출토되었다. 또한 전형적인 낙랑계 토기라 할 수 있는 승문타날 짧은목항아리가 함께 출토되었다.
피장자(被葬者)가 세형동검을 지녔다는 것은 그의 출자가 고조선에 있음을 암시한다. 아울러 남성으로 추정된다. 그리고 일산살대투겁과 삿갓 모양 동기, 수레멍에 부속구 등의 청동기로 보아 수레를 상시 이용하던 상위계층의 인물임을 짐작할 수 있다.
황주금석리유적은 재지적(在地的) 성격이 매우 강한 토기를 사용하며 세형동검을 지니고 강철제 단조 철기들이 추가되는 시기에 조영된 분묘라고 이해된다. 청동제로 만들어진 쇠뇌 방아쇠는 널방이 없는 형태로 고식으로 분류된다. 이에 따라 그 시기는 대략적으로 낙랑군 설치 초기나 그 직전으로 소급될 수 있는 서기전 2세기 말~1세기 초로 추정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