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문본. 1848년에 간행된 목판본 『삼설기(三說記)』에 실린 작품 중의 하나이다. 활자본 조선서관판 『별삼설기(別三說記)』에는 ‘황주목사기’라는 표제로 되어 있다.
옛날 동촌 이화정에 윤수현이라는 명관이 있었다. 윤공은 아들 삼형제를 두었는데, 장남 용필은 20세로 재주는 많으나 교만하고, 차남 봉필은 18세로 고집이 세고, 삼남 귀필은 16세로 뒤숭숭하고 술렁술렁한 도령이다.
윤공은 황주목사가 되어 부임하면서 세 아들로 하여금 양반의 자식으로서 갖추어야 할 행실을 닦도록 하기 위해 함께 데리고 간다.
세 아들은 말로는 공부에 힘쓸 것이라고 하여 윤공을 안심시키지만, 실제로는 공부는 하지 않고 셋이 각각 기생 하나씩을 데리고 산다.
하루는 기생들이 부모 앞에 나아가 문안인사를 한다. 윤공은 기가 막혀 아무 말 못하다가 세 아들을 꾸짖는다. 세 아들은 아버지의 꾸짖음을 냉담하게 받아들인다. 이후 그들은 방자하기가 날이 갈수록 더욱 심해져서 날마다 풍악과 창기에 빠져 산다.
그들은 책 한 장 들쳐보지 않고 밤낮없이 창고의 재물을 기생 손에 넘겨준다. 이에 세 기생은 자연 부자가 되고, 관가는 거의 망할 지경에 놓인다. 목사는 그것을 알면서도 남부끄러워 모르는 체한다.
목사는 부임한 지가 1년이 넘은지라 상경하기로 작정하고, 하루는 세 아들을 불러 어머니를 모시고 상경하도록 명한다. 세 아들은 기생들과의 뜻하지 않은 이별을 서글퍼하면서 눈물을 흘리며 각각 자기의 방으로 들어간다. 이에 목사는 세 아들의 방을 돌아다니며 아들들이 기생과 이별하는 모습을 엿본다.
맏아들 용필은 이별이 서러워 울고 있는 기생에게 ‘송구영신(送舊迎新)은 기생의 당연한 처사’라고 하면서 냉정하게 꾸짖어 내치고는 코를 골며 잠을 잔다.
둘째 아들 봉필은 이와는 달리 기생과 서로 끌어안고서, 상경하고 나서 과거급제하여 데려갈 것이니 걱정 말고 절개를 굳게 지키라고 하면서 달랜다.
셋째 아들 귀필은 기생과의 이별을 서러워하며 자기는 부모를 따라나섰다가 몰래 도망쳐나와서 아전의 서역(書役)이나 하고 지내겠다고 한다.
이러한 세 아들의 행동을 보고 나름대로 세 아들의 앞길을 짐작한 목사는 부인에게 세 아들의 장래를 이야기한다. 맏아들은 온갖 악을 자행하여 평생 평안하지 못할 것이고, 둘째 아들은 간악하여 남 속이기를 잘 하고 자신의 이익만을 취할 것이며, 셋째 아들은 태평성대에 여러 작위를 거쳐 온갖 영화를 누린 연후에 정승의 자리에까지 오르게 될 것이라 하였다. 훗날 세 아들은 과연 아버지 윤목사가 예언한 바와 똑같이 된다.
이 작품은 예언설화를 소설화한 것으로, 상대방이 아무리 기생이라 하여도 애정의 순수성을 지니고 있던 사람이 끝내 대성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이는 조선조 사회에 내재하고 있는 자아회복을 표현한 것으로 시사성 깊은 풍자라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