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인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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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정보
국악
작품
「봉래의」 정재에서 퇴장 음악으로 연주하던 기악곡.
작품/전통음악
창작 연도
1445~1449년
작자
세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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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 요약

「후인자」는 「봉래의」 정재에서 퇴장 음악으로 연주하던 기악곡이다. 죽간자를 든 기녀가 퇴장할 때 관현으로만 연주하였다. 세종대에 창제된 선초 속악 7음음계 기반의 곡으로, 『세종실록』에 악보가 전한다. 8음이 등장하며 12행 구조, 32정간 단위 박 체계를 가진다. 원래 「봉래의」의 반주음악이었으나 성종대 당악·향악의 악공 시험곡, 「연화대」 정재의 반주로도 활용되었다. 조선 전기 여러 당악정재에서 다양한 ‘인자’곡이 쓰였으나 대부분 악보가 전하지 않아, 현존하는 「전인자」·「후인자」는 당시 인자 음악을 파악하는 중요한 자료이다.

목차
정의
「봉래의」 정재에서 퇴장 음악으로 연주하던 기악곡.
내용

「후인자(後引子)」는 조선 세종대에 창제된 「봉래의(鳳來儀)」 정재에서 죽간자(竹竿子)를 든 기생이 퇴장할 때 노래 없이 관현으로만 연주하던 기악곡이다. ‘선초 속악 7음음계’의 악곡으로서 그 악보가 『세종실록(世宗實錄)』 악보에 수록되어 전한다. 시작음은 ‘청황[潢]’이고 종지음은 ‘황[黃]’이며, ‘황 · 태 · 협 · 중 · 임 · 남 · 청황 · 청태’ 등 8개 음이 출현한다. 총 12행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매 행 제10대강마다 박(拍)이 출현하므로[1행에 1회] 박 1회가 가지는 소요 정간 수는 32정간(井間)이며, 4행이 모여 장구장단 한 주기를 이룬다.

창제 당시에는 「봉래의」 정재의 반주음악으로 쓰였으나, 이후 성종대에는 「전인자(前引子)」와 함께 당악(唐樂)과 향악(鄕樂)의 악공을 취재하는 시험 곡으로도 쓰였으며, 당악 「연화대(蓮花臺)」 정재의 반주음악으로도 사용되었다. 고려 전래의 「연화대」 정재에는 죽간자가 입장 · 퇴장할 때 본래 당악 「오운개서조(五雲開瑞朝)」 인자(引子)를 연주하였으나, 성종대의 문헌인 『악학궤범(樂學軌範)』[1493]에서 입장 · 퇴장할 때의 악곡이 각각 「전인자」와 「후인자」로 바뀌어 나타난다. 언제부터 「전인자」와 「후인자」가 당악 「연화대」 정재의 반주음악으로 쓰이게 되었는지는 불분명하다.

조선 전기에는 고려 전래의 당악정재를 포함하여 새로이 창제되었거나 복원된 당악정재에 죽간자나 무원을 인도하는 악곡으로 「전인자」와 「후인자」 외에 「회팔선(會八仙)」인자、 「연대청인자(宴大淸引子)」「오운개서조(五雲開瑞朝)」 인자、「천년만세(千年萬歲)」 인자、 「중선회(衆仙會)」 인자 등 여러 ‘인자(引子)’곡들이 연주되었다. 이러한 ‘인자’곡들 가운데 「전인자」와 「후인자」를 제외한 나머지는 모두 악보가 전하지 않는다. 따라서 『세종실록』 악보에 전하는 「전인자」와 「후인자」의 악보는 조선 전기 ‘인자’곡들의 음악적 형태를 가름할 수 있는 단서가 될 수 있다는 점에서 중시된다.

참고문헌

원전

『경국대전(經國大典)』
『고려사(高麗史)』
『세종실록(世宗實錄)』
『악학궤범(樂學軌範)』

논문

정화순, 김인숙, 「선초 속악의 7음음계에 관한 연구」(『한국음악사학보』 69, 한국음악사학회, 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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