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 송선리 집터 ( 집터)

선사문화
유적
경상북도 경주시 건천읍에 있는 청동기시대 화덕자리 · 기둥구멍 · 벽도랑 관련 집터.
이칭
이칭
경주송선리주거지(慶州松仙里住居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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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경상북도 경주시 건천읍에 있는 청동기시대 화덕자리 · 기둥구멍 · 벽도랑 관련 집터.
개설

경주 송선리 집터는 고속철도 건설에 따라 2003년 1월 22일부터 같은 해 8월 29일까지 영남문화재연구원에서 발굴조사를 실시하였다. 그 결과 청동기시대 마을유적으로 판명되었으며 집터 12동 외에 구덩[竪穴] 12기, 도랑[溝] 2기 등이 조사되었다. 이 유적의 면적은 15,653㎡이다.

내용

송선리 집터는 경주 서북지역에 위치하는 단석산과 오봉산 사이의 협곡지역의 경사가 매우 가파른 산사면에 입지한다. 집터는 모두 12동이 조사되었는데, 제1호 집터를 제외한 대부분은 후대의 계단식 경작으로 인해 파괴되어 정확한 형태나 내부구조 파악에 어려움이 있다. 주거지의 평면형태는 네모모양인 제3호 집터 1동을 제외하고는 모두 긴네모모양[長方形]이다. 긴네모모양 집터의 크기는 길이 426∼660㎝, 너비 326∼475㎝, 깊이 12∼114㎝이며, 네모모양 집터는 길이 371㎝, 너비 315㎝, 깊이 60㎝이다. 집터의 내부시설로는 화덕자리[爐址], 기둥구멍[柱穴], 벽도랑[壁溝], 선반시설, 벽시설 등이 조사되었다.

화덕자리는 중앙부나 한쪽 벽에 치우쳐 1∼3개 정도 만들었으며 기둥구멍은 각 장벽 쪽에 2∼4개씩 대칭적으로 설치되었다. 벽도랑은 ‘ㄱ’자형과 ‘ㄷ’자형으로 구분되며, 선반시설은 제1호 집터에서만 나타나는데, 경사면 위쪽과 양쪽 단벽쪽에 ‘ㄱ’자형으로 설치하였다. 바닥은 불로 다져서 습기 등을 방지한 경우가 4동의 집터에서 나타나며 그 외는 맨 바닥을 그대로 사용하였다. 외부시설로는 제1호 집터의 경사면이 낮은 장벽과 단벽 모서리에서 아래쪽으로 암거식(暗渠式)의 배수구가 설치되었다. 이들 집터는 화재로 인해 폐기되고 난 후 집터 내부에 돌을 채워 폐기한 것으로 추정된다.

출토된 유물은 겹아가리무늬[二重口緣文], 골아가리무늬[口脣刻目文], 구멍무늬[孔列文], 짧은빗금무늬[短斜線文]의 문양 구성을 가진 바리모양토기[鉢形土器]와 마디 있는 간돌검[有節式磨製石劍], 피홈[血溝]있는 돌창[石槍], 끝부분이 삼각형으로 들어간 돌화살촉[三角灣入石鏃], 반달돌칼[半月形石刀], 숫돌[砥石] 등이 있다.

의의와 평가

송선리 집터 내에서 출토된 목탄에 대한 방사성탄소연대 분석 결과, 집터유적은 서기전 1160년부터 서기전 880년까지 장기간에 걸쳐 조성된 것으로 밝혀졌다. 이 유적은 경주지역에서 조사된 비교적 이른 시기의 청동기시대 집터로서 방사성탄소연대측정을 통해 구체적인 연대를 제시했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

참고문헌

『경주 송선리유적』(영남문화재연구원, 2005)
「경부고속철도 경주구간내 경주 송선리 유적 지도위원회자료」(영남문화재연구원, 2003)
집필자
배덕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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