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천의 신앙은 불교의 동점과 함께 실크로드, 중국으로 전해져, 6세기 이후 한역경전을 바탕으로 중국화된 소라머리[螺髻]의 범왕이 다수 조성되었다. 중국 당나라 때에는 장안과 사천성 등지의 사찰 벽에 범천제석도(梵天帝釋圖)가 다수 조성되었으며, 당대∼송, 서하대에는 제석천과 함께 석가불의 공양천(供養天) 또는 문수(文殊) 및 보현보살(普賢菩薩)의 변상도(變相圖)에 그려졌는데, 제왕과 같은 모습에 손에는 흰색의 불자를 들고 좌우에는 범천녀(梵天女)가 시립하고 있는 것이 일반적이다. 원대∼명대에 이르러 범천은 제석천과 함께 수륙화(水陸畵)의 여러 신 중 하나로서 소매 폭이 넓은 조복(朝服)에 오량관(五梁冠)을 쓰고 쓴 제왕형으로 손잡이가 긴 향로를 들거나 홀을 든 모습으로 표현되는 것이 일반적이다. 범천은 단독으로 그려지는 경우는 많지 않으며 제석천과 함께 조성되는 것이 일반적이다.
우리나라에서는 6세기말 60화엄경이 전래되면서 화엄신중 가운데 하나인 대범천왕(大梵天王)이 알려졌을 것으로 생각되는데 석굴암의 범천상, 제석천상에서 보듯이 8세기 중엽 이후에는 제석천과 함께 부처를 호위하고 수호하는 대표적인 호법신중이자 신중을 대표하는 존상으로 널리 신앙되면서 불교미술의 주요한 주제가 되었으나 삼국시대∼통일신라시대의 범천도는 남아있는 것이 없다. 고려시대에는 지장보살도 속에 제석천과 함께 등장하며, 부석사 조사당 벽화처럼 사찰에 벽화로 조성되기도 했다. 부석사 조사당벽화 범천도는 사천왕 및 제석천과 함께 그려졌으며, 여성적인 모습의 제석천과 달리 범천은 넓적한 얼굴에 굵은 목. 넓고 듬직한 어깨 등 전체적으로 남성에 가까운 건장한 인상을 풍긴다. 조선시대에는 미국 메트로폴리탄박물관 소장 범천도(16세기)처럼 거대한 단독의 불화로도 제작되었으며, 조선후기에는 대흥사 범천도(1847년)에서 보듯이 제석도와 함께 사찰문에 봉안되는 불화로 단독 조성되었을 뿐 아니라 신중도 속에 제석천과 상대하여 천부(天部)를 대표하는 신격으로 등장하고 있을 정도로 중요한 신중의 하나가 되었다. 신중도 속에 표현될 때는 보통 보관을 쓰고 소매가 넓은 옷을 입은 천신(天神)의 모습으로 묘사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