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남지도』는 1739년~1750년 사이 전라도의 군현 지도와 도별 지도를 수록하여 제작한 7첩 63장의 군현 지도집이다. 1첩부터 6첩까지는 제주도의 제주, 정의, 대정 등 3개 군현을 제외한 전라도의 53개 군현 지도를 수록하였으며, 7첩에는 호남 전도와 전라좌도 지도, 전라우도 지도를 수록하였다. 18세기 중앙정부가 각 군현을 파악하기 위해 전라도의 지도를 관리하고, 이를 비변사에서 활용하였던 점을 고려할 때, 이 지도는 역사적 자료로서 가치가 있다. 또한, 조선시대 지도학 발전의 모습을 보여 주는 자료로서 의미가 있다.
7첩 63장의 채색 필사본이다. 표지의 크기는 세로 36.6㎝, 가로 22.6㎝이며, 각 군현 지도의 도면은 세로 102㎝104.5㎝, 가로 78.5㎝8.8㎝이다. 일정한 축척이 반영된 지도이지만 도면의 크기가 비슷하다. 그 이유는, 각 군현의 크기[면적]에 따라 도면의 크기를 반영한 것이 아니라 1리 방안의 눈금 간격을 달리하였기 때문이다. 즉, 『호남지도(湖南地圖)』에 수록한 각 군현 지도의 1리 방안 눈금 크기는 다양하다. 다른 도의 군현 지도에 그린 1리 방안의 간격은 약 7㎜인 반면, 순천은 3.2㎜, 진산 · 운봉 · 용안 · 정읍 · 함열 · 화순 · 흥덕은 9.5㎜~9.6㎜ 간격이다. 7첩에 수록한 호남 전도는 세로 131㎝, 가로 105㎝, 전라좌도(全羅左道) 지도는 세로 122㎝, 가로 78.5㎝, 전라우도(全羅右道) 지도는 세로 114.5㎝, 가로 78.5㎝ 크기의 도면 위에 그렸다.
표제는 ‘호남지도’이다. 2008년 12월 22일에 보물로 지정되어, 현재 서울대학교 규장각한국학연구원 도서로 있다.
조선시대 대부분의 지도집처럼 제작 시기 및 제작자를 밝혀 놓지 않아 정확한 정보는 알 수 없다. 그러나 지도에 반영된 지리정보를 바탕으로 제작 시기를, 지도에 찍힌 직인 등을 통해 이용 목적 등을 추정해 볼 수 있다.
지도의 제작 시기를 추정해 볼 수 있는 지리정보는 군현 이름으로, 18세기 남원부(南原府)의 지명을 ‘일신(一新)’으로 적어 놓았다. 이는 1739년(영조 15) ‘찬규(攢揆)의 반란’으로 남원부가 일신현으로 강등되었다가, 1750년(영조 26) 다시 남원부로 복귀된 시기의 지리정보를 지도에 반영한 것이다. 따라서 이 지도집은 1739년에서 1750년 사이에 제작하였다고 추정할 수 있다. 또 1첩의 나주, 3첩의 무주부, 6첩의 광주, 7첩의 호남 전도 뒷면에 비변사(備邊司) 직인을 찍어 놓은 것으로 보아, 비변사에서 관리하고 이용하였던 지도집이라고 추정해 볼 수 있다.
1리 방안 눈금 위에 그린 53장의 군현 지도와 3장의 도별 지도로 구성하였다. 1첩에는 나주 지도를 포함하여 7장, 2첩에는 전주 지도를 포함하여 11장, 3첩에는 무주부 지도를 포함하여 10장, 4첩에는 영광군 지도를 포함하여 5장, 5첩에는 함평현 지도를 포함하여 5장, 6첩에는 광주 지도를 포함하여 12장의 군현 지도를 수록하였다. 마지막 7첩에는 호남 전도와 전라좌도 지도, 전라우도 지도를 수록하였다.
지도 내용에는 읍치와 산천, 면, 향교, 서원, 봉수, 창고, 역원, 도로 등의 지리정보를 반영하였다. 지도 여백에는 민호와 전결, 군정 수, 서울로부터의 거리, 향교와 서원의 이름과 위치, 창고와 역의 위치 등 지도를 보완하는 각 군현의 지리정보를 자세히 기록하였다.
『호남지도』에 수록한 모든 지도의 사방에 24방위를 표시하였으며, 전체적인 표현 방식과 지리정보도 일정한 체계를 갖추고 있다. 이는 각 군현에서 만든 지도를 활용해 지도집을 편집하고 제작하는 과정을 거쳤음을 보여 준다. 18세기 중앙정부가 각 군현을 파악하기 위해 전라도의 도별 지도와 군현 지도를 관리하고, 비변사에서 이를 활용하였던 점을 고려할 때, 이 지도는 역사적 자료로서 가치가 있다. 또한, 조선시대의 지도 제작 방식을 이해하는 데 중요한 자료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