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대협은 전국대학생대표자협의회의 약칭으로 1987년 8월에 결성되어, 한국대학총학생회연합(한총련)이 결성되는 1993년까지 활동한, 대학생의 전국적 대표 조직이자, 당시 민주화운동에서 큰 부분을 차지하고 있던 학생운동의 중심 조직이었다. 전대협은 당시 민주화운동의 중요한 이슈들에서 목소리를 내었고, 특히 통일문제의 제기에 적극적인 성향을 보여 1988년 평양에서 개최되는 세계청년학생축전에 전대협 대표로 임수경을 파견하기도 했다. 「전대협진군가」는 이렇게 학생운동이 최고조에 달한 ‘전대협 시기’에 전대협을 대표하는 노래였다.
노래를 지은 윤민석은 당시 한양대 노래운동 동아리를 이끌고 있었고, 이 노래뿐 아니라 「애국의 길」, 「통일의 꽃」, 「백두산」, 「지금은 우리가 만나서」 등 이 시기 대학생들이 애창하는 민중가요를 계속 창작해 발표했으며 졸업 후에도 「서울에서 평양까지」, 「전사의 맹세」, 「Fucking U.S.A.」, 「헌법 제1조」 등의 많은 노래를 지었다.
세 도막, 4/4박자 단조의 행진곡으로, 「임을 위한 행진곡」으로 고착된 민중가요의 투쟁가 형태의 대표적인 모습을 띠고 있다. 그러나 이 작품은 일반적인 행진곡들에 비해 첫 부분부터 선율의 오르내림이 급격하고 화려하며, 그에 따라 감정적 파고가 크다는 특징을 지니고 있는데, 이는 작곡자 윤민석의 특징이기도 하다. 이 노래에서 가장 인상적인 부분은 중반부 ‘강철 같은 우리의 대오 총칼로 짓밟는 너 / 조금만 더 쳐다오 시퍼렇게 날이 설 때까지’와 이어지는 ‘아 전대협이여 우리의 자랑이여’로 이어지는 종반부이다. 가사나 악곡에서 다른 단조 행진곡들처럼 비장함을 지니지만, 1980년대 초의 노래들에 비해 훨씬 더 기세등등하고 힘차며, 이는 6월시민항쟁을 승리로 이끈 대학생들의 자부심의 표현이기도 하다.
전대협이나 한총련을 대표하는 노래들이 여러 곡 생산되었지만, 「전대협진군가」만큼 널리 사랑받는 노래는 없었다. 따라서 이 노래는 1980년대 말과 1990년대 초의 학생운동을 대표하는 노래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