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바 한인회는 쿠바 이민 한인이 세운 한인회이다. 쿠바국민회회, 쿠바지방회, 마탄사스지방회 등 다양하게 불렸다. 1921년 멕시코에서 쿠바로 이민을 온 한인들이 설립하였다. 쿠바 정부의 인정을 받아 공식 단체가 되었다. 이 단체는 설립 이래 독립운동을 꾸준히 지원하여 매년 3·1절을 맞아 기념 행사와 행렬을 거행했다. 한인 2세대의 한글 교육을 위해 민성학교를 설립하여 운영하였다. 쿠바 한인회는 쿠바 한인의 실상을 알 수 있는 대표적인 단체로 조국의 독립을 위해서 노력하였던 중남미 한인의 정서를 보여주고 있다.
1921년 3월 25일에 멕시코 한인들은 배를 타고 멕시코 유카탄을 떠나 쿠바의 마나티(Manati) 항에 도착하였다. 그들은 사탕수수 농장으로 흩어져 일하였지만, 전세계적으로 설탕 가격이 폭락하면서 갑자기 일자리를 잃게 되었다. 그 뒤 1921년 5월 말경에는 마탄사스(Matanzas)의 에네켄(henequén) 농장으로 모두 이주하였다.
한인들은 엘볼로(El Bolo) 농장에 정착하고는 1921년 6월 14일에 쿠바한인회를 설립하였다. 이 때 쿠바주재 일본 영사가 일본인으로 등록을 요구하자, 이에 대항하기 위해서 미주의 대한인국민회(大韓人國民會)와 협의하고는 쿠바지방회를 세웠다. 쿠바지방회는 11월 1일에 쿠바 정부의 정식 인정을 받아서 공식단체가 되면서 쿠바 한인의 대외창구 역할을 담당하였다.
당시 회장은 서문경이 맡았고, 부회장은 이회택, 총무는 이인환, 서기는 임병일, 재무는 장성일, 법무는 김덕순, 학무는 정원성, 구제원은 호근덕, 외교원은 박창운, 대의원은 박두현, 사찰로는 박희성 등이 선출되었다. 그 뒤에 차희관과 김치일이 제2대 · 제3대 회장을 맡았고, 총무였던 박창운은 1929년에 마탄사스지방회 회장을 역임하였다.
1922년에는 미주 대한인국민회에서 지원받은 돈으로 건물을 구입하여 국민회 회관으로 사용하였다. 지방회는 설립 이래 독립운동을 꾸준히 지원하였는데, 매년 3·1절을 맞아서는 기념 행사와 행렬을 거행하기도 하였다.
한편 1922년 11월 1일에는 한인 2세대의 한글 교육을 위해 민성학교를 설립하여 운영하였다. 당시 교장은 김덕순이었고, 김병학과 이인환은 각각 교사와 감사를 맡았다. 한글과 한국 역사를 가르쳤던 민성학교는 1932년까지 쿠바지방회 임원과 학부모들의 후원으로 운영되었지만, 재정난으로 인해 1940년대 후반~1951년에는 폐쇄되기도 하였다.
1922년 3월에는 마탄사스에서 카르데나스(Cardenas)로 이주한 한인들이 대한인국민회 카르데나스지방회를 세웠고, 1937년에는 수도인 아바나(Havana)에 대한인국민회 아바나지방회가 설립되었다.
1941년 12월 7일에 일본이 진주만을 공격한 뒤, 쿠바가 미국을 지지하면서 일본에 선전포고를 하자, 쿠바한인회인 마탄사스지방회는 카르데나스지방회, 아바나지방회와 함께 1942년 7월 4일에 열린 미국 독립 경축 행렬, 12월 9일에 개최된 쿠바 ‘선전’ 1주년 기념 행사에 참가하여, 한인들이 일본과 적대관계라는 점을 쿠바 정부에 지속적으로 알렸다.
그 뒤 1943년 4월 4일에 재쿠바한족단이 출범하자, 대한민국임시정부와 대한인국민회의 활동을 지원하고, 쿠바 거주 한인의 안녕 보장, 독립운동 후원금 보내기 등 다양한 활동을 펼쳤다.
이 한인회는 쿠바 한인의 실상을 알 수 있는 대표적인 단체로, 조국의 독립을 위해서 노력하였던 중남미 한인의 정서를 잘 보여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