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안북도 정주 출신으로, 출생 연도는 미상이다. 1919년 3월 31일 정주군 동주면 장자현(長字峴)에서 사망하였다.
1919년 3월 평안북도 정주군 동주면 삼리에서 전개된 독립만세운동은 천도교인 박일경(朴一擎), 승인집(承仁楫) 등이 계획하고 추진하였다. 이들은 독립운동을 벌일 것을 모의하고 동지들을 규합하여 3월 31일을 거사일로 정하고 준비에 들어갔다.
거사 당일인 3월 31일, 박창서 · 박일경 등은 미리 준비한 태극기 2,000여 개를 시위 군중들에게 나눠준 뒤, 독립만세를 고창하였다. 그리고 이들은 시위 군중 600여 명을 이끌고 면사무소를 습격하였다. 미처 피하지 못한 면 직원 3명을 위협해 만세를 부르도록 하였으며, 문서와 기물을 파괴하였다.
시위 군중은 박창서의 주도로 태극기를 흔들고 독립만세를 고창하며 읍내로 행진하였다. 그런데 읍내 동문의 장자현에 다다랐을 때, 일경 · 소방대 · 엽부(獵夫) 등이 성호(城壕) 주변에 잠복해 있다가, 시위 군중이 다가오자 일제히 발포하였다. 이때 선두에서 시위를 주도하던 박창서는 총탄에 맞아 순국하였다.
1996년 건국훈장 애국장이 추서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