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상규 ()

근대사
인물
일제강점기 때, 충청남도 천안의 아우내 독립만세시위에 참여했다가 순국한 독립운동가.
인물/근현대인물
성별
남성
출생 연도
1880년 7월 20일
사망 연도
1919년 4월 2일
출생지
충청남도 천안
대표 상훈
대통령표창|건국훈장 애국장
내용 요약

박상규는 일제강점기, 충청남도 천안에서 일어난 아우내 독립만세운동에 참가한 독립운동가이다. 1919년 4월 1일 천안군 갈전면 병천 아우내 장터에서 '대한독립'이라고 쓴 큰 깃발을 세운 후, 독립선언서를 낭독하고 독립만세를 고창하며 장터를 누비고 시위하였다. 일본군의 총격을 당해 4월 2일에 순국하였다.

정의
일제강점기 때, 충청남도 천안의 아우내 독립만세시위에 참여했다가 순국한 독립운동가.
인적 사항

충청남도 천안 출신으로 1880년에 태어났다. 1919년 4월 충청남도 천안군 주1 아우내[竝川] 장터에서 순국하였다.

주요 활동

아우내 장터의 독립만세운동은 아우내 장날을 이용하여 거사되었다. 아우내장은 충청북도 청주와 진천, 그리고 천안군의 장꾼이 모이는 큰 장이었다. 장날인 4월 1일 약 3,000여 명의 군중들이 아우내 장터에 모였다. 1919년 4월 1일 홍일선(洪鎰善), 김교선(金敎善), 한동규(韓東奎), 이순구(李旬求), 조인원(趙仁元), 유관순(柳寬順) 등이 갈전면 아우내 장날을 기하여 일으킨 대대적인 독립만세운동에 참여하였다.

4월 1일 오후 1시경 조인원이 태극기와 ‘대한독립(大韓獨立)’이라고 쓴 큰 깃발을 세워놓고, 독립선언서를 낭독한 후 대한독립만세를 선창하자, 아우내 장터에 모인 3,000여 명의 시위 군중이 일제히 “대한독립만세”를 연창하니 온 천지가 만세 소리로 진동하였다. 군중에게 태극기가 나뉘어졌고, 군중은 열을 지어 큰 깃발을 선두로 시장을 누비고 다녔다.

시위 군중이 독립만세를 고창하며 헌병주재소로 접근하자, 일본 헌병이 기총을 난사하였다. 또한, 천안에서 불러들인 일본 헌병과 수비대까지 가세하여 무자비하게 총검을 휘둘러서, 야만적인 발포를 계속함으로써 유관순의 아버지 유중권(柳重權) 등 19명이 현장에서 사망하고 30여 명이 부상을 당했다.

이날 오후 4시경 약 40명이 주재소에 몰려가 적극적인 항의를 하였다. 군중들은 헌병들의 총부리에 달라붙고 탄약갑을 잡아당기면서 격투를 벌였다. 이때 일본 헌병들의 야만적인 발포가 또다시 있었고, 박상규(朴相圭)도 일본 군경의 흉탄에 맞아 이튿날 4월 2일 순국하였다.

상훈과 추모

1977년 대통령표창, 1991년 건국훈장 애국장이 추서되었다. 2006년 박상규의 유해가 주2 독립유공자 묘역에 안장되었다.

참고문헌

단행본

『대한민국독립유공인물록』(국가보훈처, 1997)
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독립운동사자료집』(국가보훈처, 1983)
김후경, 『대한민국독립운동공훈사』(광복출판사, 1983)
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독립운동사』 2(국가보훈처, 1971)
金正明 編, 『朝鮮獨立運動』(東京:原書房, 1967)
김승학, 『한국독립사』 하(독립문화사, 1965)
문일민, 『한국독립운동사』(애국동지원호회, 1956)

인터넷 자료

공훈전자사료관(http://e-gonghun.mpva.go.kr)
대한민국 독립운동가(http://w3devlabs.net/korea)
한국역대인물 종합정보시스템(http://people.aks.ac.kr/index.aks)
한국향토문화전자대전(http://www.grandculture.net)
주석
주1

지금의 충청남도 천안시 동남구 병천면

주2

대전광역시 유성구에 있는 현충원. 국립 서울 현충원의 안장 능력이 한계에 달하여, 지방에 애국지사와 순국선열 및 호국 영령을 모시기 위하여 ‘대전 국립묘지’로 1985년 개원하였다. 1991년에 ‘국립묘지 대전 관리소’로 승격되었다가, 1996년 현재의 이름으로 바뀌었다.    우리말샘

집필자
김성혜(가톨릭관동대학교 교양과)
    • 본 항목의 내용은 관계 분야 전문가의 추천을 거쳐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공공저작물로서 공공누리 제도에 따라 이용 가능합니다. 백과사전 내용 중 글을 인용하고자 할 때는 '[출처: 항목명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과 같이 출처 표기를 하여야 합니다.

    • 단, 미디어 자료는 자유 이용 가능한 자료에 개별적으로 공공누리 표시를 부착하고 있으므로, 이를 확인하신 후 이용하시기 바랍니다.
    미디어ID
    저작권
    촬영지
    주제어
    사진크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