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입자유화는 수입규제를 철폐해 수입을 자유화함으로써 국내산업 보호를 꾀하는 무역정책이다. 정부 수립 이후 국내 산업을 위한 보호무역주의를 채택하여 엄격한 국가통제에 입각한 수입규제 정책을 추진하였다. 1960년대 경제 개발이 본격화되면서 제한적인 수입 자유화 체제로 전환되었다. 이후 1980년대에 주요 교역 대상국의 개방 압력이 높아지고 1996년에 1996년 OECD에 가입하면서 개방경제 단계로 진입하였다. 주요 경제대국들과 자유무역협정를 체결하여 상품뿐만 아니라 용역과 서비스 등 경제 전반에 걸쳐 거의 모든 부문에서 개방화가 진행되고 있다.
1948년 정부 수립 이후 한국의 무역정책은 엄격한 국가통제에 입각한 수입규제 정책이었다. 이는 국내 산업의 발달 수준이 매우 미약해 세계시장에서 경쟁력을 가질 수 없어 국내 산업 보호를 위한 정책이 절실히 요청되었기 때문이었다.
자유방임의 무역정책은 산업 경쟁력이 어느 정도 확보된 국가에서나 가능한 정책이기에 후발 산업 국가들은 초기 단계에서 대부분 보호 무역주의를 채택하게 되는데, 이는 한국도 예외가 아니었다. 1960년대 경제 개발이 본격화되면서 무역정책도 일정한 변화를 겪게 되었다. 당시 정부는 수출지향적 산업화 정책을 폈기 때문에 국제수지 방어가 중요한 과제였고, 이에 따라 경제 개발에 필요한 품목이나 수출산업에 필수적인 원자재 수입만 최소한도로 허용하는 정책을 폈다.
경제 개발이 어느 정도 성과를 내고 수출이 큰 폭으로 성장하게 되면서 1967년에는 수입 자유화 체제로 전환하게 되었다. 그러나 당시의 수입자유화는 매우 제한적이어서 1967년의 수입자유화율은 60%에 불과했다. 이후로도 수입자유화율은 계속 하강해 1975년에는 49%까지 떨어졌다. 1978년 하반기에는 다시 수입자유화율이 66%에 달할 정도로 수입개방 정책이 강화되었지만, 당시 자유화로 풀린 품목들은 실제로 경제에 큰 영향일 미치지 못하는 것들이었다.
1978년 말부터 시작된 제2차 ‘오일쇼크’는 한국경제에 큰 충격을 주었고, 70년대 중화학공업화 정책의 무리한 추진에 따른 중복투자 등에 의해 부실기업이 속출하는 등 경제위기가 도래하게 되었다. 이에 경제부총리가 남덕우에서 신현확으로 교체되었고, 1979년 4월 ‘경제안정화 종합시책’이 발표되었다.
이 시책은 한국개발연구원 원장이던 김만제(金滿堤) 등이 주요 내용을 입안했는데, 경제안정화에 초점이 맞추어지기는 했지만, 민간 자율 확대와 농산물 수입개방 등이 포함되어 자유주의적 경제정책의 성격이 짙은 것이었다. 그러나 농민들의 반발 등 여러 사정으로 수입개방 정책이 본격화되지는 못했다.
이후 본격적인 수입자유화의 추진은 1980년대부터 시작되었다. 특히 ‘3저 호황’ 효과로 1986년부터 경상수지 흑자를 내게 되었고, 미국을 위시한 주요 교역 상대국으로부터 개방 압력이 높아지게 되었다.
1985년부터 미국은 「미통상법」 301조를 무기로 강력한 통상압력을 가해왔고, 결국 1986년 7월 21일 담배 · 지적소유권(물질특허 · 소프트웨어 · 저작권) · 보험시장 개방에 관한 통상협상을 일괄 타결하게 되었다. 이와 함께 미국의 압력과 요구에 따라 쇠고기 · 오렌지 · 포도 · 사과와 같은 농산물은 물론 밀 · 옥수수 · 콩 등의 주요 곡류도 1991년 1월까지 3단계에 걸쳐 수입이 자유화 되었고, 사료 · 원료 · 곡물에 대한 수입쿼터제도 1988년 말까지 폐지하였다.
통상압력에 따른 수입개방 정책을 추진하게 되자 1987년에는 수입자유화 품목수가 7,246개로 늘어나 수입자유화율이 91.5%에 달하게 되었다. 이후 수입자유화율은 지속적으로 높아져 1994년에는 98.5%에 달하여 완전개방에 가까운 상황이 되었다. 특히 수입개방 반대의 주된 대상이었던 농산물의 자유화율도 90% 이상으로 높아져 한국 경제는 본격적인 개방경제 단계로 접어들었다. 개방경제 체제의 완성을 알리는 상징적인 사건은 1996년 OECD 가입이었다.
수입자유화를 수반하는 개방경제 체제의 확립은 상품 수급의 원활화를 통한 물가안정, 이에 기반한 경쟁력 강화 등 순기능 효과가 기대되었으나, 1997년 한국 경제는 미증유의 위기에 직면하게 되었다. 주요 대기업의 연쇄 부도와 외환 자금의 급속한 이탈로 초래된 금융위기는 결국 IMF 구제금융을 받을 수밖에 없는 상황으로까지 나가게 되었다. 이는 경제주권이 상당한 정도로 제약되는 것은 물론 강력한 구조조정에 의해 실업률이 폭증하고 중산층이 붕괴되는 등 극심한 고통을 수반하는 것이었다.
이후 한국은 미국, EU 등 주요 경제대국들과 자유무역협정(FTA)를 체결하는 등 개방경제 체제를 가속화 했고, 상품뿐만 아니라 용역과 서비스 등 경제 전반에 걸쳐 거의 모든 부문의 개방화를 진행하게 되었다.
우루과이라운드(UR)와 WTO 체제로도 해결될 수 없었던 세계경제의 자유무역 문제가 FTA 체결로 연결됨으로써 한국 경제는 새로운 차원의 수입자유화를 경험하게 되었다. 수입자유화가 상품과 물품에 국한되지 않고 용역과 서비스, 금융, 의료, 교육 분야로까지 확대될 수 있게 된 것은 신자유주의 경제 질서가 한국 경제에 지배적 패러다임으로 관철되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