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중문화운동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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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80년대 민중을 문화의 생산과 소비의 주체로 상정하고 진행된 문화운동.
•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을 통해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내용 요약

민중문화운동은 1970∼80년대 민중을 문화의 생산과 소비의 주체로 상정하고 진행된 문화운동이다. 1970년대에 민족적 전통을 표방한 다양한 문화운동이 전개되었다. 당시 박정희 정부는 주체적 민족사관에 입각한 관제 문화정책을 추진하고 있었는데, 이에 대항하여 지배 세력과 구분되는 민중을 강조하는 대학가의 대동놀이가 등장하였다. 노동자, 농민, 도시빈민을 아우르는 민중을 주도 세력으로 활성화되어 문학, 영화, 음악, 미술, 건축 등의 분야로 확산되었다. 1987년 6월 항쟁 이후 민족주의에 입각한 민중문화를 지향하는 한국민족예술인총연합(민예총)이 결성되었다.

목차
정의
1970∼80년대 민중을 문화의 생산과 소비의 주체로 상정하고 진행된 문화운동.
내용

1970년대는 문화 영역에서 ‘민족주의’가 크게 강화되기 시작한 시기였다. 특히 1972년 7 · 4남북공동성명 발표가 던진 충격의 여파로 민족주의는 지식인들에게 중요한 문제로 여겨지게 되었다. 문학계에서 ‘민족문학론’이 대두되었는가 하면 대학가에서는 탈춤과 풍물놀이, 마당극과 노래운동 등 민족적 전통을 표방한 다양한 문화운동이 활발히 전개되었다.

민족주의에 입각한 문화운동은 당시 정부의 민족주의적 문화정책과도 밀접하게 관련되었다. 박정희 정부는 ‘주체적 민족사관’, ‘국적 있는 교육’ 등을 강조하면서 한국적 민주주의를 내세웠는데, 이에 따라 다양한 전통문화 정책들이 추진되었다. 무형문화재(현, 무형유산), 유형문화재 지정에서부터 호국유적지 정비 사업이나 민족기록화 제작 등의 정부 정책은 문화 분야의 민족주의적 관심을 촉진시켰다.

민족전통을 강조하게 된 1970년대 비판적 지식인들의 관심은 곧 민중문화 분야로도 확대되었다. 이들은 민족의 중심적 구성 부분을 ‘민중’으로 보고 민중들의 삶과 문화를 통해 민족문화를 재구성하고자 했다. 이러한 입장은 지배세력과 구분되는 ‘민중’을 강조하고자 했던 것인데, 지배와 피지배자의 구분을 중요하게 여기지 않으면서 ‘국민총화’를 내세웠던 당시 정부의 입장과는 대비되는 것이었다.

1980년대 민중문화운동이 본격적으로 전개되었다. 특히 5 · 18 광주민주화운동을겪은 이후 운동세력의 급진화가 진행되었고, 민중문화운동 또한 급진적 전망을 가지게 되었다. ‘민중’의 개념도 1970년대까지는 다소 막연하게 피지배 세력 일반을 지칭하던 용어로 쓰였지만, 1980년대에는 노동자, 농민, 도시빈민 등 기층 대중을 중심으로 구체화되었고, 변혁운동의 주도세력으로 상정되었다. 「님을 위한 행진곡」은 5 · 18 광주민주화운동이 민중문화운동에 미친 영향을 상징적으로 보여주었다.

한편 전두환 정부는 1980년 컬러 텔레비전 방송을 시작했는가 하면 프로축구프로야구를 출범시키고 1981년에는 ‘ 국풍 81’을 진행하며 대대적인 관제 문화정책을 추진했다. 민중문화운동은 이에 대한 적극적인 비판을 전개하며 더욱 발전하게 되었다. 정부의 관제문화에 대항해 광범위하게 확산된 대학가의 대동놀이가 그 대표적인 사례였다.

대학가의 민중문화운동은 노래패, 탈반 등의 동아리를 통해 대중적으로 확산되었고 대학가 밖으로 그 영향력이 확대되기 시작했는데, 1984년 결성된 ‘새벽’은 대학 노래패 출신들이 중심이 된 전문적 노래운동 단체였다. 이외에도 문학 분야에서는 『실천문학』, 『노동해방문학』 등의 잡지가 만들어졌고, 영화 · 미술 등의 분야에서도 민중문화운동이 활발하게 전개되었다.

각 분야의 운동이 활성화되면서 이를 연계할 조직의 필요성이 대두되어 1984년 ‘민중문화운동협의회’가 만들어졌다. 이 조직은 문화 독점구조를 깨뜨려 광범위한 민중이 참여할 수 있는 문화의 건설을 강조했으며, 이후 1987년 ‘민중문화운동연합’으로 개칭되어 협의회보다 더 높은 연합 수준의 조직으로 거듭나게 되었다. 이어 1989년에는 ‘ 노동자문화예술운동연합’으로 조직체계가 전환되었는데, 이는 1987년 노동자 대투쟁 이후 급성장하고 있던 노동운동과 노동자 중심의 문화운동과 궤를 같이 하는 것이었다.

한편 1987년 6월 항쟁 이후 합법공간이 대폭 확대되자 민중문화운동의 대중화 문제가 중요한 의제가 되었다. 각 영역별로 진행되던 민중문화운동의 대중화는 1988년 한국민족예술인총연합(민예총)의 결성으로 연결되었다. 이 단체는 문학, 미술, 민족극, 영화, 음악, 춤, 건축, 사진 등 다양한 분야의 문화예술인들이 결집되어 839명의 발기인이 모집될 정도로 민중문화운동의 저변이 확대되었음을 보여주었다.

민예총은 창립 선언문에서 “소수의 예술가만이 아니라 민중 전체가 보다 높은 예술적 가치를 공유할 수 있는 참 민중적 민족문화예술의 기틀을 건설할 것”을 천명했는데, 1970년대 이래 강조되어온 민족주의에 입각한 민중문화라는 지향을 잘 보여주는 것이었다. 1980년대까지 활발한 활동과 발전을 보여주었던 민중문화운동은 1990년대 이후 냉전질서 해체, 소련 및 동구 사회주의 국가들의 몰락 등 국내외 정세의 변화 속에서 큰 부침을 겪게 되면서 이념과 지향, 내용과 형식 등에 있어서 커다란 전환과 모색이 필요하게 되었다.

참고문헌

『한국민주화운동사』3(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돌베개, 2010)
『민중문화운동의 실천론』(김정환·백원담, 화다, 1985)
『문화와 통치』(한국기독교사회문제연구원 편, 민중사, 1984)
집필자
황병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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