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96년, 미국 남장로교 선교사 루이스 테이트(Lewis B. Tate)가 전주에서 시작하였다.
남장로교 선교사 루이스 테이트와 그 여동생 매티 테이트(Mattie Tate)는 1895년 크리스마스 직전에 전주에 정착했다. 매티의 집은 부엌에 마루가 딸린 온돌방이 있었다. 테이트의 가옥에는 온돌이 2개였는데 각각 서재와 침실로 사용했다. 일요일이면 테이트의 방에 남자 아이들이, 매티의 방에 부인들이 몰려들었고, 이때 테이트는 그의 주1와 함께 문밖 입구에 서서 그들에게 복음을 전했다. 세례 지원자들이 많았으나 진정으로 세례를 받고자 하는 이는 일부였으며, 대부분은 정치적이거나 경제적인 이유에서 가입을 원하는 듯했다. 주중에도 테이트와 매티는 각각 자신의 방에서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했다.
테이트의 집 근처 어느 초가에 한 어머니와 아들이 살고 있었다. 어머니 김씨 부인은 테이트 남매의 행동을 자세히 관찰하던 중 그들이 제사를 지내지 않는 등 조상 주2를 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계속해서 관찰을 하다보니 흥미가 생겨 매티의 집에서 매주 열렸던 집회에 직접 참석했다. 이곳에서의 복음의 이야기는 단순하면서도 믿음직스럽게 증거되고 있었다. 그러자 다음에는 12세인 아들을 이 모임에 데려갔다. 그 결과 1년 반이 지난 1897년 7월 17일, 테이트의 집에서 5명(김내윤 · 김창국 · 김창국의 어머니 강씨 · 함성칠의 부인 임씨 · 김성희)이 세례를 받게 되었다. 인도자는 6월에 전주로 내려온 레이놀즈(William D. Reynolds)였다. 레이놀즈는 그 이전 약 2년 동안 서울에서 한글 성서 번역 작업에 종사하였고, 이제 뒤늦게 합류한 것이다. 레이놀즈의 주도로 전주 서문교회는 완산에서 화산으로 이전할 수 있었다.
1905년 9월, 서문 밖 현 위치로 옮겨 780평 기지를 구입하고 건평 50평의 벽돌 기와 지붕 예배당을 건축하였다. 1908년 8월에는 김필수가 장로를 맡아 비로소 당회가 조직되었다. 1908년 12월에는 전북 지역 선교를 하다 사망한 전킨(William M. Junkin) 선교사를 기념하는 주3을 세웠다. 1911년 4월, 종교 세력이 커지자 예배당을 ‘ㄱ 자형’으로 32평을 늘려 총 89평의 큰 예배당을 건설하였다. 1935년에는 다시 종교 세력을 키우기 위해 현 위치에 평면 115평, 주4 230평의 2층 벽돌집 예배당을 새로 지었다.
1971~1974년에 걸쳐 평면 100평, 연건평 320평에 지하실과 지상 3층의 교육관을 지었다. 1981년 기존 예배당이 낡자 평면 300평, 연건평 790평, 지하 1층, 지상 2층의 현재 예배당을 3년에 걸쳐 새로 지었고, 1983년에 교회 창립 90주년 기념식과 주5을 거행하였다. 이후 교회 창립 100주년을 기념하여 평면 120평, 연건평 705평, 지하 1층, 지상 5층의 ‘100주년 기념관’을 1992년에 완공하였다.
2019년 3월 대한예수교장로회 총회(합동) 전북노회에 다시 가입하였고, 4월에는 총회 한국기독교 역사 사적지 제6호로 지정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