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용 요약
병호시비는 1620년(광해군 12) 여강서원(후에 호계서원)에 배향된 이황의 제자 김성일과 류성룡 위패의 위치를 두고 안동을 비롯한 영남지역 유림들이 병파와 호파로 나뉘어 대립한 분쟁이다. '병'은 류성룡 계열의 병산서원이고 '호'는 김성일 계열의 호계서원을 뜻한다. 위패의 위치는 제자로서의 지위를 결정하는 것으로 병파는 직위를, 호파는 나이를 내세우며 동쪽을 주장하였다. 이후로도 여러 사안으로 분쟁이 이어지다가 2013년 호계서원 복원사업을 계기로 동쪽에 류성룡, 서쪽에 김성일의 위패를 모시는 것으로 결정되면서 종지부를 찍었다.
정의
1620년(광해군 12) 이후에 안동을 비롯한 영남 지역 유림들이 병파와 호파로 나뉘어 전개된 분쟁.
개설
역사적 배경
여강서원이 이황의 주향처라는 점에서 위차는 도학(道學)의 고하를 논하여야 하지만 이를 판단하는 것이 쉽지 않은 문제였기에 현실적으로 작위(爵位)와 나이가 그 기준으로 제시되었다. 유성룡 계열에서는 작위를 내세워, 영의정을 지낸 유성룡을 동쪽에 두어야 한다고 하였고, 김성일 계열에서는 나이를 내세워 4살 위인 김성일을 동쪽에 두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이런 논란 속에 당시 영남을 대표하던 정경세(鄭經世)의 자문을 받아 유성룡을 동쪽에, 김성일을 서쪽에 두는 ‘애동학서(厓東鶴西)’로 결정되어 일단락되었다. 김성일 계열에서는 불만이 있었으나, 당시 정경세의 위치 등을 감안하여 그대로 따르면서 논란이 일단락되었다.
경과
이후 1812년(순조 12) 호파에서 이상정(李象靖)을 호계서원에 추향하자는 논의가 제기되었다. 이는 이상정의 추향을 통해서 호계서원이 이들의 거점이라는 사실을 표방하며 퇴계학파의 최대 계파로서의 위상을 확고하게 다지기 위한 것이었다. 이에 대해 병파는 병산서원을 중심으로 통문을 돌리는 등 반발하였다. 이에 관찰사가 나서서 이를 중재하려고 하였으나, 병파는 정치력을 동원하여 호파를 압박하였고, 호파는 혈연, 학연, 지연을 동원하여 대응하면서 양자의 사이를 벌려나갔다.
결과
이후 흥선대원군은 이 시비를 국가적 사건으로 간주해서 충역(忠逆)의 기준으로 논단할 수도 있다는 의향을 비치며 해결을 지시했다. 결국 삼계서원(三溪書院)에서 병산서원에 보합을 촉구하는 통문을 보내는 한편, 양측의 일부 인사들이 해결방안을 모색하였다. 그 결과 보합적 분위기가 마련되면서 흥선대원군은 보합의 상징적인 조치로 병파와 호파의 주장을 담은 『여강지(廬江志)』와 『대산실기(大山實記)』의 목판과 판본을 불태우도록 지시했다. 같은 해 12월 14일 대구 감영에서 소각함으로써 상징적으로 논란이 종식되는 듯하였다.
그러나 1871년(고종 8) 흥선대원군에 의해 호계서원이 훼철(毁撤)되면서 양측의 시비가 온존하는 가운데 2013년 5월 호계서원의 복원 사업을 계기로 경상북도에서 내놓은 중재안이 받아들여져 유성룡을 동쪽에, 김성일을 서쪽에 배향하며, 이상정을 서쪽에 배향하는 것으로 결정되면서 종지부를 찍게 되었다.
의의와 평가
참고문헌
- 『조선후기 유림의 사상과 활동』(권오영, 돌베개, 2003)
- 「퇴계학파의 분화와 병호시비」(Ⅱ)(설석규, 『퇴계학과 한국문화』45, 2009)
- 「정재학파 성리학의 지역적 전개양상과 사상적 특성」(이상호, 『국학연구』15, 2009)
- 「영남지역 서원의 정치사회적 성격」(김학수, 『국학연구』11, 2007)
- 「19세기 후반 영남유림의 정치적 동향: 만인소를 중심으로」(정진영, 『한말 영남 유학계의 동향』, 영남대학교 출판부, 1998)
- 「병호시비에 대하여」상·하(신석호, 『청구학총』1·3, 1930·1931)
주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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