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가삼존도」는 18세기 전반에 조성된 석가 삼존 불화이다. 서울특별시 용산구 국립중앙박물관에 소장되어 있으며, 규모가 크고 묘사가 뛰어난 수작이다. 석가모니불 앞쪽에 아난존자와 가섭존자가 전면에 배치되는 구성은 도상적으로 희소하여 학술적 가치가 높다. 일제강점기 일본으로 유출되었다가 미국을 거쳐 2014년 국내로 환수된 문화재이다.
18세기 전반에 조성된 불화로, 일제강점기 일본으로 유출되었다가 1944년 미국 버지니아주 허미티지박물관으로 입수되었다. 2014년에 한 게임업체에서 불화를 구입하여 문화재청 국외소재문화재재단(현, 국외소재문화유산재단)에 기증하였다. 이후 국립중앙박물관에 소장되었다.
현재 세로 318.5㎝, 가로 315㎝의 크기로, 원래의 장황과 화기는 소실되었다. 대형 화면에 석가모니를 중심으로 왼쪽의 문수보살(文殊菩薩), 오른쪽의 보현보살(普賢菩薩)의 삼존(三尊)을 그리고, 대좌의 앞쪽에는 가섭존자(迦葉尊者)와 아난존자(阿難尊者)을 배치하였다. 석가모니불 광배의 뒤쪽으로는 2위(位)의 타방불(他方佛)과 관을 쓴 남성형의 인물과 여성형의 인물이 대칭으로 그려 있다.
원래의 장황은 소실되었지만 족자 형태로 벽에 거는 그림으로 조성되었을 것으로 추정되며 비단 바탕에 채색하였고 종이에 배접한 낱장의 형태로 남아 있다. 그림 부분의 경계인 붉은 계선(界線) 아래로도 결실되었는데, 화기는 그 아래쪽에 위치해 있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석가모니불은 키형의 광배를 배경으로 항마촉지인(降魔觸地印)을 결한 채 대좌 위에 결가부좌(結跏趺坐)하였다. 석가모니불은 높은 육계를 하고 있으며 육계 사이에 중간계주와 정상계주를 갖추었다. 모란문과 국화문이 그려진 내의(內衣)를 입고 가장자리에 화문(花文)이 장식된 붉은 가사를 입고 있다. 석가모니의 좌우에는 여의(如意)를 든 문수보살과 연봉오리를 든 보현보살이 입상(立像)의 자세로 협시하고 있다. 문수와 보현보살은 큰 키에 화려한 보관과 천의를 갖춰 입었다. 두 보살은 비슷한 얼굴에, 같은 보관을 썼으며 지물(持物)은 다르지만 형태면에서 좌우가 거의 동일한 대칭이다.
삼존의 아래쪽에는 존자 2위가 그려져 있다. 석가모니의 제자인 가섭과 아난존자이다. 아난존자는 가섭존자를 향해 있는 측면의 모습으로, 가섭존자는 정면을 향해 손을 모은 채 앉아 있는 모습으로, 마치 이야기를 하는 장면을 포착한 듯 회화적으로 그려져 있다. 상단 부분에는 두 위의 부처가 좌우 대칭되어 있는데 타방불로 보인다. 석가모니불과 육계의 형태와 모습이 동일하다.
화면의 상단 부분에는 2위의 타방불과 용왕, 용녀가 배치되어 있는 데, 모두 상반신만을 보인다. 타방불 2위는 석가모니불과 마찬가지로 높은 육계와 중간계주, 정상계주를 갖췄으며 방형의 얼굴에 미소를 띤 얼굴 모습이다. 관을 쓰고 있는 남성형의 인물과 여성형의 인물은 영산회(靈山會)에 등장하는 용왕(龍王)과 용녀(龍女)로 추정된다.
불화는 붉은색을 주조색으로 하였으면서도 흰색, 검은색 등을 부분적으로 사용하였고, 채운(彩雲) 등에는 중간색을 사용하여 따뜻한 느낌을 준다. 중앙의 석가모니불의 얼굴은 개채로 인하여 어색해 보이며 화면의 부분에 오염 등이 있는데, 이는 불화가 원래의 봉안처를 오랫동안 떠나 있었던 데서 기인한 것으로 보인다.
석가모니불 앞쪽에 아난존자와 가섭존자가 전면에 배치되는 구성은 도상적으로 희소하다. 삼존의 구도나 보살의 보관과 영락 장식 등의 표현에 있어 1731년에 제작된 송광사 응진전 석가모니불도와 유사하다. 또한 석가모니 부처의 광배나 대의의 문양 등은 17세기 후반에서 18세기 전반의 양식을 보여준다. 이 불화의 제작 시기는 대략 1730년대로 추정된다. 아난존자, 가섭존자, 석가모니 부처의 좌우 협시보살 등 등장인물의 섬세한 표정 묘사 등이 주목되는 작품이다.
작품의 규모가 세로 및 가로가 각 3m가 넘는 대형 불화라는 점에서 사찰의 주전각 후불도로 추정된다. 일제강점기 초반 국내 어느 사찰에서 무단으로 뜯겨 일본으로 반출된 것으로 추정되는데, 반환되어 국내에 소장되었다는 점에서도 의미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