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용 요약
정의
18세기 전반에 조성된 석가 삼존 불화.
내용
형태 및 특징
원래의 장황은 소실되었지만 족자 형태로 벽에 거는 그림으로 조성되었을 것으로 추정되며 비단 바탕에 채색하였고 종이에 배접한 낱장의 형태로 남아 있다. 그림 부분의 경계인 붉은 계선(界線) 아래로도 결실되었는데, 화기는 그 아래쪽에 위치해 있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석가모니불은 키형의 광배를 배경으로 항마촉지인(降魔觸地印)을 결한 채 대좌 위에 결가부좌(結跏趺坐)하였다. 석가모니불은 높은 육계를 하고 있으며 육계 사이에 중간계주와 정상계주를 갖추었다. 모란문과 국화문이 그려진 내의(內衣)를 입고 가장자리에 화문(花文)이 장식된 붉은 가사를 입고 있다. 석가모니의 좌우에는 여의(如意)를 든 문수보살과 연봉오리를 든 보현보살이 입상(立像)의 자세로 협시하고 있다. 문수와 보현보살은 큰 키에 화려한 보관과 천의를 갖춰 입었다. 두 보살은 비슷한 얼굴에, 같은 보관을 썼으며 지물(持物)은 다르지만 형태면에서 좌우가 거의 동일한 대칭이다.
삼존의 아래쪽에는 존자 2위가 그려져 있다. 석가모니의 제자인 가섭과 아난존자이다. 아난존자는 가섭존자를 향해 있는 측면의 모습으로, 가섭존자는 정면을 향해 손을 모은 채 앉아 있는 모습으로, 마치 이야기를 하는 장면을 포착한 듯 회화적으로 그려져 있다. 상단 부분에는 두 위의 부처가 좌우 대칭되어 있는데 타방불로 보인다. 석가모니불과 육계의 형태와 모습이 동일하다.
화면의 상단 부분에는 2위의 타방불과 용왕, 용녀가 배치되어 있는 데, 모두 상반신만을 보인다. 타방불 2위는 석가모니불과 마찬가지로 높은 육계와 중간계주, 정상계주를 갖췄으며 방형의 얼굴에 미소를 띤 얼굴 모습이다. 관을 쓰고 있는 남성형의 인물과 여성형의 인물은 영산회(靈山會)에 등장하는 용왕(龍王)과 용녀(龍女)로 추정된다.
불화는 붉은색을 주조색으로 하였으면서도 흰색, 검은색 등을 부분적으로 사용하였고, 채운(彩雲) 등에는 중간색을 사용하여 따뜻한 느낌을 준다. 중앙의 석가모니불의 얼굴은 개채로 인하여 어색해 보이며 화면의 부분에 오염 등이 있는데, 이는 불화가 원래의 봉안처를 오랫동안 떠나 있었던 데서 기인한 것으로 보인다.
의의 및 평가
작품의 규모가 세로 및 가로가 각 3m가 넘는 대형 불화라는 점에서 사찰의 주전각 후불도로 추정된다. 일제강점기 초반 국내 어느 사찰에서 무단으로 뜯겨 일본으로 반출된 것으로 추정되는데, 반환되어 국내에 소장되었다는 점에서도 의미가 있다.
참고문헌
단행본
- 『깨달음에 대한 설법, 서운산 청룡사 괘불』(국립중앙박물관, 2015)
- 『한국의 불화』 6(성보문화재연구원, 1996)
논문
- 유경희, 「 LA카운티미술관 '신흥사 영산회상도'」(『강좌미술사』 45, 한국불교미술사학회, 2015)
- 김지원, 「조선후기 영산회상도 연구」(숙명여자대학교 대학원 석사학위논문,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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