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자 청화매조죽문 항아리는 16세기경에 조선 왕실에서 사용하기 위해 관요에서 제작된 청화백자 항아리이다. 항아리의 몸체에 코발트 안료를 사용하여 매화, 새, 대나무를 한 폭의 그림처럼 그려넣었다. 문양의 구도가 안정적이고 농담의 표현과 붓을 다루는 능숙한 필치에서 높은 회화적 수준을 볼 수 있다. 2020년 1월 6일 보물로 지정되었고, 이화여자대학교 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1469년(예종 원년) 경기도 광주에 관요(官窯)가 설치되어 백자 제작에 획기적인 발전을 이루게 되었다. 청화백자에서 푸른색 문양을 그리는 데 필요한 산화코발트는 문헌에 회청(回靑)이나 회회청(回回靑)으로 기록되는 값비싼 수입 안료였다. 산화코발트 안료가 금처럼 귀했고 구하기도 힘들었다는 기록을 볼 때, 청화백자의 사용 계층은 왕실과 그에 준하는 정도의 매우 제한적인 신분이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실제 조선 전기 관요지에서 출토되는 청화백자의 수가 많지 않고 전세되는 작품도 드문 편이다. 조선 전기 청화백자는 경기도 광주 우산리, 번천리, 도마리 일대 관요지에서 제작되었다.
청화백자의 문양은 짙고 옅은 농담(濃淡)의 색조 표현이나 필치에서 높은 회화적 수준을 볼 수 있다. 성현(成俔)의 『 용재총화(慵齋叢話)』에는 사옹원 관리가 화사(畫史)를 인솔하여 광주 관요에 가서 어기(御器) 제작과정을 감독하고 어부(御府)로 보냈다는 기록이 있다. 이로써 조선 전기 관요에서 제작된 청화백자의 문양은 궁중 화원이 직접 그렸음을 알 수 있다.
백자 청화매조죽문 항아리는 조선 전기에 제작되는 전형적인 입호(立壺) 형태이며, 몸체에 매화, 새, 대나무를 소재로 하여 한 폭의 그림처럼 문양을 그려넣었다. 두 그루의 매화나무와 그 사이에 배치된 세죽(細竹)을 배경으로 네 마리의 새가 각각의 자세로 개성있게 표현되었다.
지조와 절개를 상징하는 세한삼우(歲寒三友)에서 매화, 대나무를 결합하고 새를 추가하여 매조죽문을 완성하였다. 새는 날아가거나 앉아서 지저귀는 등 네 마리 모두 다른 형상으로 표현되어 화면 전체에 생동감을 주며, 가지마다 한껏 올라온 매화봉오리에서 초봄의 정취가 느껴진다.
백자 청화매조죽문 항아리는 16세기경에 운영된 광주 관요지에서 정제된 태토와 수입 코발트 안료를 사용하여 제작된 청화백자이다. 항아리의 형태가 단아하고 청화 안료의 푸른색이 은은하게 잘 표현되었다. 매화, 대나무 등의 문양 소재에서 조선 왕실의 성리학적 취향을 볼 수 있으며, 16세경의 관요산 청화백자의 높은 제작 수준을 볼 수 있다. 2020년 1월 6일 보물로 지정되었고, 이화여자대학교 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