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교일과(聖敎日課)』의 수진본(袖珍本)이며, 상·중·하 3권으로 되어 있다. 17세기 후반에 간행된 것과 1823년에 간행된 책이 알려져 있다.
17세기 후반본 『수진일과』는 디아즈(E. Diaz, 陽瑪諾), 푸르타도(Furtado, 傅汎際), 피구에레도(Figueredo, 費樂德), 카타네오(Cattaneo, 郭居靜), 페레이라(Ferreira, 費奇規) 등 예수회 중국 선교사들이 편집과 교정에 참여했고, 예수회의 페르비스트(Verbiest, 南懷仁) 신부와 부글리오(Buglio, 利類思) 신부가 중정(重訂)하였다. 그리고 이 책의 대본은 1638년 이전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17세기 후반본은 1665년에 간행된 『성교일과』와 내용이 동일하다. 그리고 간행에 참여한 사람들도 같다. 따라서 이 기도서는 1665년본 『성교일과』의 수진본이라고 할 수 있다. 실제 『수진일과』의 목차에는 ‘천주성교일과’라고 되어 있고, 이제(耳題)에는 ‘성교일과’라고 되어 있다. 다만 『수진일과』에는 속권(續卷)을 두어 새로운 기도문들을 첨부하였는데, 이러한 사실에서 『수진일과』의 간행 시기가 1665년 이후임을 알 수 있다.
17세기 후반본과 함께 1823년 마카오 교구의 샤심(Francisco chacim, 光) 주교가 감준한 『수진일과』도 있다. 이 책의 편집자는 알 수 없고, 목차와 본문에 ‘천주성교일과’라고 되어 있는 것으로 보아, 1823년본도 『성교일과』의 수진본임을 알 수 있다. 두 판본은 모두 상·중·하 3권으로 되어 있으나, 수록된 기도문에는 차이가 있다. 그리고 17세기 후반본이 속권을 두어 새로운 기도문을 첨부한 것도 다른 점이다.
내용상 두 판본에 수록된 기도문이 다른 것은 17세기 후반 이후 기도서의 변화와 관련이 있지 않을까 추정된다. 즉 1602년 소주(韶州)에서 간행된 롱고바르디(Longobardi, 龍華民)의 『성교일과』는 초간 된 이후 여러 차례 개정되었는데, 그 과정에서 내용의 증감(增減)이 있었다.
예를 들어 1775년에 상·하 2권으로 간행된 『총독회요(總牘滙要)』는 『성교일과』의 개정본 중의 하나인데, 이 기도서의 상권에는 『성교일과』에 수록된 기도문들이 있는 반면, 하권에는 태반이 『성교일과』에 없는 내용들이다. 그리고 『총독회요』의 내용 중에 있는 ‘은사요지(恩赦要知)’, ‘봉재내대사조(封齋內大赦條)’ 등은 17세기 후반본에는 없고, 1823년본에 수록되어 있다. 이것으로 보아, 시간이 지나 기도서가 개정될 때 내용의 증감이 있었고, 그 결과 두 판본의 차이도 생긴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수진일과』가 조선에 전해진 것은 18세기 후반이다. 최필공(崔必恭)은 1790년 이전부터 이 기도서를 가지고 있었고, 정인혁(鄭獜赫)과 그의 삼촌은 최필공에게 『수진일과』를 빌려보기도 했다. 정인혁은 이 책의 40여 장을 베껴서 매일 외웠다고 하며, 그의 삼촌도 한글로 번역한 『수진일과』을 소지하였다. 그리고 김건순(金建淳)이 주문모(周文謨) 신부에게 『수진일과』 3권을 배웠으며, 신유박해(1801년) 때 체포된 신자들로부터 압수한 서적 중에 한문본 『수진일과』도 있다.
「17·8세기에 전래된 천주교 서적」(배현숙, 『교회사연구』3, 1981)
「천주성교 공과의 원본」(최윤환, 『가톨릭대학교 논문집』2, 1976)
『入華耶穌會士列傳』(費賴之 著·馮承鈞 譯, 臺灣商務印書館, 1960)
『明淸間耶穌會士譯著提要』(徐宗澤, 臺灣中華書局, 195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