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동형 초상 및 함은 조선 후기의 문신 박동형의 전신좌상 및 반신상 초상화와 이를 각각 보관했던 목재 영정함이다. 박동형이 영조 대에 분무공신으로 녹훈되어 하사받은 전신좌상 초상화와 그후 충훈부에서 제작한 화첩을 바탕으로 제작한 반신상 초상화이다. 조선시대 마지막 공신인 분무공신의 초상화로 인물의 사실적 묘사가 뛰어나다.
박동형(朴東亨, 1695-1739)의 본관은 충주, 호는 소와당(笑臥堂), 만촌(巒村)이다. 1728년(영조 4) 무신란의 주동자의 한 사람인 박필현(朴弼顯)을 붙잡는데 공을 세워 분무공신(奮武功臣) 3등에 녹훈되었으며 공신 초상화를 하사 받았는데 전신좌상이 이에 해당하는 작품이다. 그후 1751년(영조 27)에 충훈부에서는 분무공신 14명의 반신상을 그려 「훈부화상첩(勳府畵像帖)」을 만들어 기공각(紀功閣)에 보관하고 부본(副本)을 제작하여 해당 공신들에게 나누어 주었다. 이를 바탕으로 다시 그린 것이 반신상 초상화이다.
전신좌상은 오사모에 단령을 입고 두 손을 소매 속에 모아 잡은 채 교의에 앉아 있는 모습이다. 배경은 생략되었으며 바닥에는 아무것도 깔려 있지 않다. 교의에는 표피가 덮여 있고, 두 발은 족좌 위에 놓았다. 쌍학흉배와 학정금대를 착용하고 있다. 등신대의 인물을 실감나게 표현했으며 전체적으로 정교하게 묘사하였다. 초상화를 보관했던 목재 영정함이 함께 전해지고 있다.
반신상은 오사모에 단령을 입은 상반신의 모습인데, 전신좌상을 축소하여 그린 듯하다. 옆으로 살짝 돌린 얼굴의 각도와 이에 따른 이목구비의 표현, 명암의 처리 등에서 매우 흡사하다. 세부 표현을 상세하게 묘사하여 전체적으로 정교함이 두드러진다. 역시 초상화를 보관했던 목재 영정함이 함께 전해지고 있다.
전신좌상은 조선시대 마지막 공신인 분무공신으로 녹훈될 때 제작된 것으로 국가 주도로 제작한 공복본 초상화의 정점을 보여준다. 반신상의 경우 정확한 제작 연대를 알 수는 없으나 함께 전하는 1751년 화첩본 초상화와 인물의 크기가 거의 같아서 두 작품이 밀접한 관련이 있다. 2017년 1월 2일 보물로 지정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