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홍립이 후금(後金, 청나라)에 항복한 과정을 그린 작품이다. ‘강로(姜虜)’란 ‘강씨 오랑캐’라는 뜻으로 강홍립을 지칭한다. 이 제목만으로도, 권칙이 강홍립에 대하여 매우 부정적으로 인식하고 있음을 엿볼 수 있다.
「강로전」은 현재까지 총 5종의 이본이 발견되었다. 특히 이건(李健, 1614∼1662)의 『규창유고(葵窓遺稿)』에 실려 있는 「강로전」은 한글본으로 유통되던 것을 한문으로 다시 번역한 이본이라는 점에서 주목된다. 당시에 「강로전」이 한글과 한문으로 광범위하게 읽히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이 작품은 “강은 조선의 큰 성이고, 로는 오랑캐를 이른다.”는 말로 시작하면서, 강씨를 대대로 명문거족으로 치켜세우면서 강홍립을 소개한다. 그리고는 그가 궁술과 마술로 함경남도병마사가 되었음도 밝혀, 재주와 능력이 뛰어났음을 은근히 밝힌다. 이는 강홍립의 행적이 부당하였음을 부각하기 위한 의도적인 서술로 보인다.
이후 명나라의 요청으로 이루어진 강홍립의 출병. 임금인 광해군의 밀지를 핑계로 오랑캐와의 전쟁에서 적극적이지 않았던 강홍립의 행태. 여진(女眞) 통역원 하서국(河瑞國)을 시켜 누루하치[努爾哈赤]에게 항복하는 글을 보낸 후, 오랑캐 장군 귀영가(貴永可: 누루하치의 아들)에게 투항하는 모습. 누루하치에게 충성을 다짐하는 시를 지어 신임을 얻은 일.
임진왜란 때 항복하였다가 함께 출전한 왜병들이 검술 시범을 기회로 누루하치를 죽이려 했던 계획을 미리 알려주어 실패하게 한 사건. 누루하치가 장교인 조선의 양반들도 좋지 않은 마음을 먹고 있을 거라며 찾아 죽일 때 강홍립의 심복들만 죽음을 면한 일. 강홍립이 누루하치를 부추겨 요동과 심양을 공격하게 하고, 김경서(金景瑞)를 선봉으로 삼아 출정하게 하자, 김경서가 요동 장군과 내통하여 도리어 오랑캐를 치려고 하다가 발각된 일.
누루하치가 한족인 소 학사의 딸을 배필로 주선하자, 강홍립이 반하여 고국으로 돌아가기를 잊은 일. 역적 한윤(韓潤)이 망명하여 와서 ‘강홍립 친족들이 모두 죽임을 당하였다’며 조선을 정벌할 것을 제안하자 강홍립이 소 학사 딸의 만류로 주저하다가, 결국 누루하치를 계승한 홍태시(洪太時, 청나라 태종)에게 조선을 위협하여 화의를 맺도록 건의한 일.
홍태시의 두 왕자와 함께 조선을 침입한 강홍립이 한윤의 말이 거짓이었음을 깨닫고 강화 후 조선에 남은 일. 고향에 돌아와 부끄러워하며 두문불출하다가 끝내 병사한 일. 작가가 강홍립의 일을 기록하게 된 경위 등이 순차적으로 기술되고 있다.
분명한 것은 작품 속에 그려진 내용들 대부분이 역사적 실제 사실과는 차이가 많다는 점이다. 그렇게 하면서까지 강홍립을 부정적으로 그린 일차적인 이유는 ‘숭명배청의식(崇明排淸意識)’이다. 오랑캐에게 항복한 강홍립을 희생양으로 삼은 것이다. 결국 이 작품은 명청의 교체기에 있었던 조선의 사상적 변화를 담지하고 있는 작품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