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 미탄사지 삼층석탑

  • 예술·체육
  • 유적
  • 남북국
  • 국가문화유산
경상북도 경주시 구황동 미탄사지에 있는 통일신라의 석탑.
유적/탑·비
  • 건립 시기8세기 후반
  • 높이6.12m
  • 소재지경상북도 경주시
  • 양식일반형 석탑
  • 재질석재
국가문화유산
집필 및 수정
  • 집필 2020년
  • 진정환 (제주국립박물관 학예연구실)
  • 최종수정 2023년 03월 21일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으로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내용 요약

경주 미탄사지 삼층석탑은 경상북도 경주시 구황동 미탄사지에 있는 통일신라의 석탑이다. 8세기 후반에 조성되었을 것으로 추정되며, 복원된 현재 높이는 6.12m이다. 신라 왕경 내에 현존하는 유일한 석탑으로, 그 형태가 정연하고 적절한 비례감을 지니고 있다. 통일신라의 석탑 양식이 변화되는 과도기적 요소를 지니고 있어 역사적 · 학술적 가치가 크다.

정의

경상북도 경주시 구황동 미탄사지에 있는 통일신라의 석탑.

건립 경위

미탄사『삼국유사』『계원필경』 등의 문헌자료에 최치원의 옛집을 이야기할 때 언급된 유서 깊은 사찰이지만, 1980년 발굴조사 전까지 어디인지 불분명하였다. 그러나 1980년 삼층석탑 하부와 주변 발굴조사에서 '미탄(味呑)'이 새겨진 기와가 나와 이곳이 미탄사였다는 것이 밝혀졌다.

형태와 특징

미탄사지 삼층석탑은 1980년 발굴조사 이전까지는 무너져 있어 기단부와 탑신부 일부 부재가 소실된 채로 방치되어 있었다. 1980년에 남은 부재들을 모아 복원하였고, 없어진 부재는 새로 만들어 조립하였다.

석탑은 낮은 하층기단과 높은 상층기단의 이중기단에 3층으로 이루어진 탑신부와 상륜부로 이루어진 신라의 일반적인 형태의 석탑 가운데 하나이다. 다만, 상륜부는 노반만 남아 있으며, 현재 높이는 6.12m이다.

이 석탑의 조성 시기는 옥개석 받침이 5단인 9세기 전반 이전 신라 석탑과 달리 3단인 점을 근거로 9세기 중엽 이후부터 10세기 초에 조성된 것으로 여겨져 왔다. 그러나 기단의 탱주(撑柱) 수가 상 · 하층 각각 2개씩인 점, 기단을 구성하는 부재의 수와 기단과 탑신의 비례 등이 경주 천군동 동 · 서 삼층석탑, 경주 불국사 삼층석탑 등 8세기 중엽 이전 석탑과 유사한 것으로 보아, 이 석탑은 아무리 늦어도 8세기 후반에는 조성되었을 것으로 보인다.

한편, 미탄사지 발굴에서는 석탑의 기단부와 하부 구조가 밝혀졌다. 먼저 구덩이를 넓게 파고 이를 단단히 굳힌 다음, 큰 돌과 작은 돌로 채우고 점토를 다지고 불을 지펴 단단히 굳히는 것을 여러 차례 더하여 기초를 다졌다. 기단 내부에는 70㎝ 내외의 큰 돌을 쌓고 사이에 작은 돌과 흙을 섞어 다졌다.

하층기단 갑석 부분에서는 새 모양 석제품을 비롯하여 소형 금동불 입상, 수정제 장식, 금동 영락, 벼루 편 등 지진구(地震具) 6점이 수습되었다. 이 밖에도 넝쿨무늬 암막새, 도 · 토기, 당삼채 조각 등이 확인되었다.

의의 및 평가

경주 미탄사지 삼층석탑은 신라 왕경 내에 현존하는 유일한 석탑으로, 비록 파손 및 결손된 부재를 신재로 보강 및 보충하여 신재와 구재 간 이질감이 있지만, 최초로 기초부 조사를 실시하여 조탑 방식 연구에 단초를 제공하였다. 또한, 그 형태가 정연하고 적절한 비례감을 지니고 있어 역사적 · 학술적 가치가 크다.

통일신라의 전형적인 석탑 양식이 변화되는 모습으로 과도기적 요소를 지니고 있어 석탑 양식 변화 연구의 실증적 자료로서 가치가 더욱 크다. 2017년 1월 11일 보물로 지정되었다.

참고문헌

  • 단행본

  • - 『미탄사지(味呑寺址)』(국립경주박물관, 2007)

주석

  • 주1

    : 쓰러지지 않도록 받치는 기둥. 우리말샘

  • 주2

    : 돌 위에 올려놓는 납작한 돌. 우리말샘

  • 주3

    : 구슬을 꿰어 만든 장신구. 목이나 팔 따위에 두른다. 우리말샘

  • 주4

    : 우리나라에서는 토착신앙과 도교의 지신(地神)이라는 개념 위에 불교적인 의례가 수용되기 시작하면서 삼국시대에서 통일신라, 고려, 조선시대의 건축물이나 탑, 무덤 등의 건축물을 세울 때 건물의 안전을 위해 제사를 지내기도 하고 건물의 주변이나 내부에 공양품으로써 다양한 종류의 물건을 용기에 담아 땅에 묻기도 하였다. 이러한 물품들은 진단구(鎭壇具) 또는 지진구(地鎭具)라고 하는데, 건물을 새로 짓거나 수리할 때 불이나 큰 재앙을 막고자 하는 벽사(辟邪)와 기원(祈願)의 뜻을 담아 땅 속에 묻는 물건을 말한다.

  • 주5

    : 중국 당나라 때에, 초록색 · 황색 · 백색 또는 초록색 · 황색 · 남색의 세 가지 빛깔의 잿물을 써서 만든 도자기. 무덤에 넣는 그릇으로 많이 썼다.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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