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찰의 구조는 석탑지를 중심으로 남쪽에 중문지, 북편에 금당지가 일직선상에 배치된 형식이다.
금당지는 석탑지에서 북쪽으로 8.2m 떨어져 있는데, 이중기단에 정면 5칸, 측면 5칸의 규모로 확인되었다. 금당지 남쪽 동서 2곳에 발굴조사 전부터 무너진 탑 부재가 노출되어 있었는데, 양 탑 사이는 7.7m가 떨어져 있다.
두 탑은 이중기단에 삼층의 탑신인데, 상층기단 면석에는 팔부중상을 조각하였다. 1층 탑신에는 문비(門扉)를 조각하였다. 석탑 축기부 조사 시 그 주변에서 지진구(地鎭具)인 항아리 4점이 출토되었다. 탑 상륜부는 발굴조사에도 확인되지 않았다.
중문지는 탑지에서 남쪽으로 8m 정도 떨어진 곳에 있다. 이 중문지는 '아(亞)'자 형의 특이한 평면 형태를 보인다. 여기에서는 1m 정도 되는 치미(鴟尾) 편과 지진구 5점이 확인되기도 하였다. 중문지 좌우에는 동 · 서 회랑지와 연결하는 익랑이 확인되었다.
사지의 중심축에 배치된 중문지-탑지-금당지 좌우 양쪽에 남북 방향으로 길쭉한 동 · 서 회랑지가 확인되었다.
사찰은 가람의 구조, 석탑의 양식 특징을 고려할 때 8세기 중후반에서야 사찰이 조영되었을 것으로 보인다. 한편, 발굴조사에서는 8세기 후반 가람이 들어서기 전 건물지가 확인되었다.
6세기 말~7세기 중엽의 것으로 추정되는 건물지는 백제 지역에서 성행하던 기와로 기단을 만드는 소위 와축기단 건물지인데, 사찰의 부속건물로 볼 수 있는 근거는 없다.
7세기 말8세기 전반까지로 추정되는 유구 가운데 이중기단의 목탑지가 확인되었다. 가장 마지막 단계의 가람은 금당과 2기의 석탑, ‘아(亞)’자 형 중문을 갖춘 가람인데, 8세기 후반10세기 전반에 운영되었다.
경주 인왕동 사지는 신라의 전형적 쌍탑가람을 보이면서도 동시에 ‘아(亞)’자 형 건물지 등 독특한 유구가 확인되고 있으며, 통일신라시대 미술의 특징이 뚜렷한 석탑, 자기, 토기, 목간 등이 출토되었다.
신라 사찰 구조 및 건축 연구자료로서 역사적 · 학술적 가치가 크다. 1991년 3월 25일 경상북도 문화재자료(현, 문화유산자료)로 지정되었다가, 2016년 1월 28일 사적으로 승격 지정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