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방광원각수다라요의경 권상 2의2(大方廣圓覺修多羅了義經 卷上二之二)는 조선 세조 때 금속 활자로 인쇄한 불경이다. 이 불경은 조선 세조 때 새로 주조한 을유자(乙酉字)로 인쇄된 『원각경구결(圓覺經口訣) 』 총 11권 가운데 네 번째 권이다. 경문(經文)과 함께 당나라 규봉 종밀(圭峰宗密)의 주석서 『원각경약소』와 『원각경약소초』를 함께 실었으며, 앞의 두 가지에는 세조가 붙인 한글 토(吐)가 있다. 을유자는 오래 사용되지 못해서 인쇄본이 많이 남아 있지 않으므로 조선시대 국어학 및 금속 활자 연구에 귀중한 자료이다.
이 경전에 주석을 단 규봉 종밀(圭峰宗密)은 당나라 때 승려로서 시호(諡號)는 정혜선사(定慧禪師)이다. 중국 화엄종(華嚴宗)의 5조(五祖)로 추앙되지만, 교선일치(敎禪一致)를 주창하여 『선원제전집(禪源諸詮集)』을 발간하기도 하였다. 특히 『원각경(圓覺經)』에 정통하여 이에 대한 주석서를 여러 권 썼는데, 후세 『원각경』을 보는 이들은 거의 규봉 종밀의 주석에 의지한다.
조선 세조 때인 1465년(세조 11)에 주조한 금속 활자인 을유자를 조판하여 인쇄한 책이다. 전체 권수는 권상(卷上) 다섯 권, 권하(卷下) 여섯 권 등 총 11권인데, 이 책은 네 번째 권이다. 다섯 구멍을 뚫어 실로 제본한 선장본(線裝本)이며 크기는 가로 16.6㎝, 세로 25.5㎝이다.
표지의 제목은 ”원각경(圓覺經)”이라 되어 있는데, 제목 아래 권수가 적혀 있었을 것으로 생각되나 흐려져 잘 보이지 않는다. 본문은 한 면에 여섯 행이고 구분선[계선(界線)]이 있다. 세 가지 크기의 활자가 사용되었는데, 경문은 가장 큰 활자로 한 행에 13자, 큰 주석은 중간 크기의 활자로서 한 칸 내려 행마다 18자가 두 줄로 배열되어 있다.(圓覺寺)
『대방광원각수다라요의경』은 일명 『원각경』이라고도 하는데, 『원각경언해(圓覺經諺解)』와 『원각경구결(圓覺經口訣)』에는 세조가 직접 붙인 한글 토, 즉 구결(口訣)이 있다. 작은 주석은 현토(懸吐) 없이 한 행에 네 줄이 들어가는 작은 활자가 사용되었고, 시작 부분에 ○ 표시가 있다.
『대방광원각수다라요의경』은 최상의 완전한 깨달음을 의미하는 원각(圓覺)에 대해 설한 대승경전(大乘經典)이라는 의미로서 당나라 때 계빈국(罽賓國)에서 온 불타다라(佛陀多羅)가 한역하였다. 흔히 『원각경』으로 약칭되며, 선가(禪家)에서 중시하는 경전이다.
열두 보살이 차례로 원각에 이르기 위한 수행방법 등에 대해 세존(世尊)에게 질문하면 세존이 차례로 답변하는 식으로 전개된다. 분량이 적어서 품(品) 구분이 되어 있지 않으므로 예로부터 경전을 12명의 대표 질문자를 기준으로 문단을 나누고 각각 질문한 보살의 이름을 붙여 구분하였는데, 이 책은 제3 보안보살장((普眼菩薩章)을 담고 있다.
또한, 이해를 돕기 위해 『원각경』 해설에 절대적 권위를 갖는 규봉 종밀의 주석을 구절마다 첨부하고 있는데, 여기에 활용된 주석서는 『원각경약소(圓覺經略疏)』와 이를 다시 해설한 『원각경약소초(圓覺經略疏鈔)』 두 가지이다.
을유자는 우리나라 사람이 쓴 글자를 모본(母本)으로 한 독자적 서체의 금속 활자라는 점에서 인쇄사적 의미가 크다. 그러나 주로 불경을 간행할 목적으로 제작되었기 때문에 신하들의 강한 반대로 오랫동안 사용되지 못하였고, 결국 20여 년 뒤 녹여서 새 활자 제작에 활용되었다.
이러한 이유로 인쇄본이 많지 않으므로 조선시대 국어학 및 금속 활자 연구에 귀중한 자료적 가치를 지닌다. 충청북도 청주시 청주고인쇄박물관에 소장되어 있으며, 국가유산의 가치를 인정받아 2020년 3월 6일 충청북도 유형문화재(현, 유형문화유산)로 지정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