몽산화상법어약록은 1517년(중종 12) 충청도 연산 고운사에서 목판으로 인쇄한 법어집이다. 이 법어집은 송말원초(宋末元初)의 중국 선승(禪僧)인 몽산(蒙山) 덕이(德異)의 설법 가운데 ‘시고원상인(示古原上人)’, ‘시각원상인(示覺圓上人)’, ‘시유정상인(示惟正上人)’, ‘시총상인(示聰上人)’ 등 네 가지를 담고 있다. 무자(無字) 화두(話頭)를 참구(參究)하는 방법을 설한 ‘무자십절목(無字十節目)’의 앞부분과 ‘고담화상법어(古潭和尙法語)’의 뒷부분도 합철되어 있다. 조선 초에 신미(信眉)가 언해한 것을 목판에 새겨 인쇄한 책이다.
설법자 몽산화상(蒙山和尙)의 법명은 덕이이고, 송나라 말기인 1231년경에 태어나 원나라 초기인 1308년 무렵까지 활동한 임제종(臨濟宗)의 고승이다. 장쑤성[江蘇省]에 있는 작은 암자인 휴휴암(休休庵)에 은둔하던 말년에 자신을 찾아온 고려의 고승과 왕족, 관료들에게 들려준 법문과 이후 서신 교류, 그리고 자신이 편집한 『육조단경(六祖壇經)』 등을 통해서 고려 및 조선 선불교(禪佛敎)에 큰 영향을 미쳤다.
원문에 토(吐)를 달고 번역한 신미(信眉)는 간경도감(刊經都監)에서 여러 불전(佛典)을 번역하고 간행하는 데 주도적 역할을 하여 세조에게 혜각존자(慧覺尊者)라는 시호(諡號)를 받은 고승이다.
표지의 제목은 “몽산약록(蒙山略錄)”이며 가로 17.6㎝, 세로 29.1㎝의 크기이다. 목판에 새겨서 닥종이에 인쇄한 뒤 실로 꿰맨 선장본(線裝本)이다. 본문은 7행 18자로 되어 있어 8행 17자로 새긴 간경도감본(刊經都監本)과는 다르다. 권말의 간행 기록에 따르면 정덕12년 정축[1517년]에 충청도 연산(連山) 고운사(孤雲寺)에서 목판에 새겨 출간하였다고 한다.
편집 체제를 보면 한문 매 자(字)마다 우리말 발음을 달았고, 구절 뒤에는 토씨를 달아 읽기 편하게 하였다. 적당한 단락마다 ○ 표시를 하고 우리말로 번역하였는데, 원문보다는 작은 글씨로 새겨 두 줄로 배열하였다. 또한, 어려운 어휘가 나오면 흑어미(黑魚尾) 두 개를 대괄호처럼 사용하여 용어 풀이를 하고 있다.
몽산의 법어(法語)는 여러 가지가 전하는데, 이 책에 담겨 있는 것은 ‘시고원상인’을 시작으로 고원(古原) · 각원(覺圓) · 유정(惟正) · 총(聰) 등 네 명의 승려에게 내리는 법어와 ‘무자십절목’이다. 네 명의 승려는 모두 고려 사람으로 생각되는데 행적이 알려진 이는 각원(覺圓) 상인(上人)뿐으로, 그는 1295년(고려 충렬왕 21)에 휴휴암으로 몽산화상을 찾아간 고려인 8명 가운데 한 명이다.
몽산은 법어를 통해 화두(話頭)를 참구할 때의 수행방법이나 수행 중 나타나는 문제 등에 대해 세밀하게 설명하고 있다. 이어지는 ‘무자십절목’은 조주(趙州) 종심(從諗) 선사(禪師)에 의해 제창된 무자 화두를 참구하는 방법을 상세히 밝히는 글이다. 그런데 이 책에서는 이 글이 조금 전개되다가 갑자기 다른 문장으로 이어진다.
내용을 보면, 고려 혜감국사(慧鑑國師) 만항(萬恒)이 설법한 ‘고담화상법어’의 뒷부분으로서 이는 보통 『사법어언해(四法語諺解)』에 포함되어 간행되는 글이다. 권미제(卷尾題)에 '사법어종(四法語終)'이라 되어 있는 것으로 보아, 본디 이 『몽산화상법어약록』은 『사법어언해』와 합철된 책인데 후대에 손상된 부분을 떼어내고 나머지를 그대로 이어붙인 것일 수 있다.
권수제(卷首題)가 “몽산화상법어약록(蒙山和尙法語略錄)”으로 되어 있고, “보제존자법어부(普濟尊者法語附)”라고 소제목이 첨부되었음에도 본문 가운데 ‘보제존자’의 법어가 없다는 것도 이 가능성을 뒷받침한다.
이 언해본은 1467년(세조 13) 간경도감에서 처음 번역, 간행된 이후 가장 이른 시기의 판본이다. 국어가 변천되는 과정에서 사라진 ㆁ, ㆆ, ㅿ,ㆍ 등의 한글 자모음의 용례를 살펴볼 수 있어서 조선 초기 서지학 및 국어사 연구에 있어서 귀중한 자료이다.
충청북도 청주시 청주고인쇄박물관에 소장되어 있으며, 초기 훈민정음의 변천을 볼 수 있는 귀한 자료로 국가유산의 가치를 인정받아 2020년 3월 6일 충청북도 유형문화재(현, 유형문화유산)로 지정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