몽산화상육도보설은 조선 전기, 목판에 새겨 인쇄한 불서이다. 이 불서(佛書)는 고려와 조선의 선불교(禪佛敎)에 큰 영향을 미친 중국 임제종(臨濟宗) 승려 몽산화상(蒙山和尙)이 일반 대중을 상대로 행한 설법서이다. 업(業)으로 인해 윤회하는 세계인 육도(六道)와 이를 벗어난 사성(四聖)의 경지를 설명하고, 대중 각자 수행하여 성불할 것을 축원하는 내용이다. 1497년(연산군 3) 전라도 진안(鎭安)의 현암(懸庵)에서 목판에 새겨 인쇄되었는데, 6행 13자본으로는 가장 이른 것이며 인쇄가 선명하다.
이 책의 설법자 몽산화상은 법명이 덕이(德異)이며, 송나라 말기인 1231년 무렵에 태어나 원나라 초기인 1298년 이후까지 활동한 임제종의 고승이다. 말년에는 장쑤성[江蘇省]에 있는 작은 암자인 휴휴암(休休庵)에 은둔하였다.
원(元)나라 세조(世祖)[쿠빌라이 칸]의 부마(駙馬)인 충렬왕이 다스리던 때, 고려의 고승과 왕족 · 관료들이 그를 몇 차례 방문하여 법문을 듣고, 서신 왕래를 통해 가르침을 받는 등 고려 불교계에 큰 영향을 미친 인물이었다. 그가 편집한 덕이본(德異本) 『육조단경(六祖壇經)』은 고려에 전해진 이후 현재까지 한국의 선불교에서 중시되는 책이다.
몽산화상은 고려의 승속(僧俗)이 그를 직접 방문해 법문을 듣거나, 그의 제자 철산(鐵山) 소경(紹瓊)이 고려에 초청되는 등 고려 불교계와 매우 밀접한 교류가 있었는데, 이 과정에서 그의 설법을 누군가 기록한 『육도보설(六道普說)』 사본이 고려로 전해진 것으로 추정된다.
조선조(朝鮮朝)에 들어 세종 치세에 처음 인쇄된 이후, 조선에서만 25차례 이상 간행되었다. 이 책은 책 말미의 간기(刊記)를 통해 홍치(弘治) 10년 8월, 즉 연산군 치세인 1497년에 전라도 진안(지금의 전북특별자치도 진안군) 용출산(龍出山)에 있는 현암에서 목판에 새겼음을 알 수 있다. 용출산은 마이산(馬耳山)의 고려시대 이름이다.
닥종이에 인쇄한 뒤, 실로 묶어 제본하였으며 가로 16.7㎝, 세로 28.5㎝의 크기이다. 겉장은 유실되었지만 현재 발견된 6행 13자본 『육도보설』 가운데 가장 이른 것이다.
보설(普說)이란 도가 높은 고승이 전문 수행자 소수나 1인을 상대로 가르침을 주는 것이 아니고, 승속의 일반 대중을 상대로 널리 보편적으로 설법한 것을 뜻한다. 설법의 서두는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라는 『화엄경(華嚴經)』의 게송(偈頌)으로 시작하면서도 일반 대중을 위해 지옥(地獄), 아귀(餓鬼), 축생(畜生), 아수라(阿修羅), 인간(人間), 천상(天上)으로 구별되는 세계를 설명한다.
이 육도는 선악의 업력을 통해 의지와 관계없이 윤회하는 고통의 세계이다. 이어서 인간 가운데 큰 의지를 일으켜 육도윤회(六道輪廻)를 해탈한 성문(聲聞), 연각(緣覺), 보살(菩薩), 불(佛) 등 네 성인의 경지를 밝힌다. 앞의 육도와 합쳐서 육범사성(六凡四聖)의 십법계(十法界)라고 부른다.
설법자는 이어 법회에 참석한 대중은 각자 서원(誓願)을 세우고 『화엄경』과 다라니(陀羅尼)를 독송하며, 참회와 공양 그리고 화두(話頭) 참구(參究) 등을 통해 성불할 것을 축원하고 있다.
한 차례 이루어진 설법이므로 분량이 많지 않고 장, 절의 구분도 없이 한 책으로 이루어져 있다. 중국에서는 찾아볼 수 없고 한국에만 널리 간행, 유통되었다.
충청북도 청주시 청주고인쇄박물관에 소장되어 있으며, 국가유산의 가치를 인정받아 2020년 3월 6일 충청북도 유형문화재(현, 유형문화유산)로 지정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