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자인 대전화상 요통이 어떤 인물인지는 분명하지 않다. 흔히 대전화상이라고 하면 당나라 때의 선승(禪僧)인 보통(寶通, 732~824)을 가리키고, 이 책에 대한 기존의 해설들도 대부분 저자로 보통 선사를 지목하지만, 사실 다른 인물일 가능성이 높다. 이름이 보통이 아니고 요통이라는 까닭도 있지만, 무엇보다도 주석에 활용한 글 가운데 보통 선사보다 후대 인물의 글이 있다는 점이 큰 이유이다.
이 책에서 주해(註解)를 하면서 인용된 조사(祖師)들 가운데는 달마대사(達磨大師), 육조(六祖) 혜능(慧能), 석두(石頭) 희천(希遷), 백장(百丈) 회해(懷海)와 같은 선대 고승들도 있지만, 설두 중현(雪竇重顯, 980~1052), 단하 자순(丹霞子淳, 10641117), 불안 청원(佛眼淸遠, 10671120), 보봉 유조(寶峰惟照, 1084~1128) 등과 같이 보통보다 후세 인물인 송대의 선승들도 포함되어 있는 것이다.
기록에 보면 보봉 유조의 제자 8인 가운데 대전통(大顚通) 선사가 있다고 하는데, 대전통 선사가 이 책의 저자일 가능성이 있다. 아무튼 이 책은 일반적으로 알려진 대로 당나라 때의 대전화상이 아니고 남송(南宋)시대의 선사가 저술한 것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고려 공민왕(恭愍王) 때인 1360년(공민왕 9)에 목판에 새겨서 닥종이에 인쇄한 한 권짜리 책이다. 다섯 군데에 구멍을 뚫고 붉은 실로 제본한 선장본(線裝本) 형태이며, 크기는 가로 15.7㎝, 세로 24.5㎝로서 현대에 흔히 보는 책과 비슷하다. 표지에는 다른 종이에 “원돈문“이라는 제목을 써서 붙여 놓았다. ‘원돈(圓頓)’은 원만한 이치를 단박에 모두 갖춘다[圓滿頓足]는 뜻이다. 즉, 원만한 이치를 원만하게 갖춰진 마음으로써 단박에 속히[頓速] 깨달아서 부처를 이루는 것을 말한다.
『대전화상주심경』은 흔히 『반야심경』 혹은 『심경(心經)』이라고 약칭하는 『반야바라밀다심경(摩訶般若波羅蜜多心經)』을 구절마다 풀이한 책이다. 표지를 넘기 면 “마하반야바라밀다심경해서(摩訶般若波羅蜜多心經解序)”라는 제목과 “대전선사요통주(大顚禪師了通注)”라는 저자명이 나오고, 서문이 두 쪽에 걸쳐 예서체(隸書體)로 인쇄되어 있다.
이어 “대전화상주심경(大顚和尙注心經)”이라는 제목 아래 해서체(楷書體)로 본문이 전개된다. 본문의 인쇄 체제를 보면 “마하((摩訶)”에서 시작하여 마지막 “사바하(娑婆訶)”까지 『반야심경』을 63개의 구절로 나누어 큰 글씨로 새기고, 각 구절의 밑에 작은 글씨를 두 줄로 새기는 할주(割註) 방식으로 주해를 붙여 놓았다.
주해에는 『금강경(金剛經)』, 『법화경(法華經)』, 『열반경(涅槃經)』, 『화엄경(華嚴經)』 등 불교 경전과 『노자(老子)』, 『장자((莊子)』, 『논어(論語)』 등 유(儒) · 도가(道家) 경전을 활용하는 외에 선대 선승들의 법어(法語)와 일화를 자주 인용하여 선(禪)적인 이해를 도모하고 있다.
책의 마지막 장에는 왕과 공주, 그리고 왕후의 안녕을 기원하는 축원문과 지정(至正) 20년 경자(庚子), 즉 1360년 5월에 계원(戒元) 선사가 새겼다는 간행 기록이 나온다. 여기서 왕이란 공민왕을, 공주란 원나라 황족으로서 공민왕이 왕자 시절에 시집 온 노국대장공주(魯國大長公主)를 지칭하는 것으로 보인다.
이 책은 경전의 교학(敎學)을 주로 선(禪)적인 관점에서 풀이하여 교선일치(敎禪一致)의 전범을 보인다는 점에서 불교사적 의의가 있으며, 발견된 판본이 희소하고, 서예사에 있어서도 중요한 가치를 갖는 것으로 평가된다. 충청북도 청주시 청주고인쇄박물관에 소장되어 있으며, 국가유산의 가치를 인정받아 2020년 3월 6일 충청북도 유형문화재(현, 유형문화유산)로 지정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