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나라 때 대흥선사의 불공(不空)이 한문으로 번역하였다.
부산광역시 기장군 해동용궁사 소장의 『성가니분노금강동자보살성취의궤경(聖迦尼忿怒金剛童子菩薩成就儀軌經)』 3권 1책은 한지 표지에 네 구멍을 뚫고 한지의 종이 끈으로 꿰맨 선장본(線裝本)의 형태이다. 전체 크기는 가로 26.5㎝×세로 31.0㎝이다.
판식(版式)은 한 줄의 검은 바깥 테두리로 표시된 상하단변(上下單邊)이며, 본문 밖의 네 부분이 한 줄의 검은 선으로 두른 사주단변(四周團邊)의 흔적도 남아 있다. 개별 장은 개별 본문의 각 줄 사이를 구분하는 경계선이 없는 무계(無界)이다.
특정의 개별 장의 전체에 새겨진 전곽(全郭)의 행자 수는 제1장이 22행 14자이며, 제2장부터는 23행 14자이다. 특정의 내용에는 2행의 작은 글자로 배열된 주쌍행(註雙行)의 형태이다.
권수제(卷首題)는 “성가니분노금강동자보살성취의궤경(聖迦抳忿怒金剛童子菩薩成就儀䡄經)”이며, 그 아래에는 권상(卷上) 단(旦)과 같이 권 · 권차(券次) 및 천자문 함차(函次)의 순서로 배열되어 있다. 권수제의 다음 행에는 “대흥선사의 삼장사문 대광지 불공이 황제의 명령으로 한문으로 번역하였습니다[大興善寺三蔵沙門大廣智不空奉 詔譯].”라는 한역 정보가 본문보다 작은 글자로 표기되어 있다.
권미제(卷尾題)는 권수제의 형식 가운데 천자문의 함차 단(旦) 자만 제외하고 동일하다. 제1장을 제외한 개별 장의 본문 내용 마지막 다음에 작은 글자로 새겨진 판미제(板尾題)는 “성가니금강동자보살성취의궤경(聖迦抳金剛童子菩薩成就儀䡄経)”이며, 그 아래에는 권상(上卷) 제이장(苐二張) 단(旦)과 같이 권차 · 권 · 제 · 장차(張次) · 장 및 천자문의 함차가 표기되어 있다.
권상 제24장과 권중 제28장 및 권하 제17장의 권미제 다음에는 해당 목판의 간행 정보가 새겨져 있다.
『성가니분노금강동자보살성취의궤경』 3권 1책은 청색 · 황색의 두 금강동자(金剛童子) 가운데 청색 금강동자를 받들어 소원을 이루는 밀교(密敎) 의식 절차를 설법하는 불교 기록유산으로, 당나라 때 대흥선사에서 승려 지식인 불공이 한문으로 번역하였다.
해동용궁사 소장의 『성가니분노금강동자보살성취의궤경』 3권 1책은 13세기 중엽 몽골 침략의 격퇴를 기원하는 목적으로 조성된 합천 해인사 대장경판 가운데 편제된 해당 목판을 후대에 찍어 만든 인출본이다. 해당 목판은 권상 · 중 및 권하가 1246(고려 고종 33)∼1247년(고려 고종 34) 고려국대장도감(高麗國大藏都監)에서 고려 황제 고종의 명령으로 조성하였다.
해동용궁사 소장의 해당 인출본은 3권 1책의 글자가 마모되어 있으므로, 해당 목판이 조성된 이후 상당한 시기가 지난 시점에 찍어 만든 후쇄본(後刷本)이라 할 수 있다.
해동용궁사 소장의 『금강반야바라밀경(金剛般若波羅蜜經)』 3권 1책은 임시의 표지 안에 권수제― 한역 정보― 본문 내용― 권미제― 간행 정보의 순서로 구성되어 있다. 그리고 제1장을 제외한 제2부터는 판미제가 표기되어 있다.
해당 목판은 권상 제24장 및 권중 제28장의 권미제 다음에 “병오년[1246년] 고려국대장도감에서 고려 황제 고종의 명령으로 『성가니금강동자보살성취의궤경』 권상 · 중의 목판을 새겨 만들었습니다[癸卯歲髙麗國大藏都監奉勅雕造].”라는 간행 정보가 표기되어 있으며, 권하의 제17장의 권미제 다음에도 “정미년[1247년] 고려국대장도감에서 고려 황제 고종의 명령으로 『성가니금강동자보살성취의궤경』 권하의 목판을 새겨 만들었습니다[丁未歲髙麗國大藏都監奉勅㓮雕造].”라는 간행 정보가 각각 새겨져 있다.
해동용궁사 소장의 『성가니분노금강동자보살성취의궤경』 3권 1책은 13세기 중엽 합천 해인사 대장경판의 조성 불사 실체와 성격을 비롯하여 조성 불사 당시의 현실 인식과 해당 경판의 보존 상태, 인출 역량과 먹 · 종이의 종류 등을 진단할 수 있는 원천자료로서의 역사 · 문화적인 가치를 가진다고 할 수 있다. 국가유산의 가치를 인정받아 2014년 9월 24일 부산광역시 유형문화재(현, 유형문화유산)로 지정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