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운사 묘법연화경 권4~7(白雲寺 妙法蓮華經 卷四~七)은 1443년(세종 25) 전라도 고산(현, 전북특별자치도 완주군) 불명산의 화암사에서 간행한 목판을 1456년(세조 2) 이후 찍어 만든 불교 경전이다. 이 불경은 구마라습(鳩摩羅什)이 한문으로 번역한 『묘법연화경』을 계환(戒環)이 주해를 붙여 지은 『묘법연화경요해(妙法蓮華經要解)』이다. 1443년 전라도 고산(高山) 불명산(佛明山) 화암사(花巖寺)에서 개판한 목판을 1456년 음력 6월 이후 찍어 만든 인출본(印出本)이다.
송나라 온릉(溫陵) 개원련사(開元蓮寺)의 승려 계환(戒環)이 주해(註解), 저술하였다.
부산광역시 해운대구 백운사(白雲寺) 소장의 『묘법연화경』 4권 1책은 전체 7권 가운데 권4∼7의 영본(零本)이며, 누른색 계열의 표지에 다섯 구멍을 뚫고 붉은색 계열의 실로 꿰맨 오침안정법(五針眼訂法)의 선장본(線裝本)이다.
표지 · 철사 및 표지 제목은 후대 수리 · 개장(改裝)되었다. 전체 크기는 가로 16.5㎝×세로 27.2㎝이며, 본문 내용을 두른 테두리 안쪽의 반곽(半郭) 규격이 가로 13.4㎝×세로 20.8㎝이다. 앞표지에는 닥종이에 “법화경하(法華经下)”라 묵서(墨書)된 제첨(題簽)이 후대 수리 · 보완되었다.
판식(版式)은 본문 밖의 네 부분이 한 줄의 검은 선으로 표시된 사주단변(四周團邊)이며, 개별 본문의 각 줄 사이를 구분하는 경계선이 없는 무계(無界)이다. 개별 장을 가운데로 접는 판심(版心)의 형태이다. 판심에는 물고기 꼬리 모양으로 장식한 어미가 없는 무어미(無魚尾) 형태이며, 판심제(版心題)가 있다. 특정의 개별 장을 가운데로 접은 반곽의 행자 수는 10행 20자이다.
변상도(變相圖)의 제목은 “묘법연화경 변상(妙法蓮華経變相)”이다. 권수제(卷首題) · 권미제(卷尾題)와 그 아래에는 “묘법연화경(妙法蓮華経)” 및 “권제사(卷苐四)”의 권(卷) · 제(第) · 권차(卷次)가 각각 있으며, 권7의 권미제는 ‘제(苐)’ 자가 ‘제(第)’ 자로 표기되어 있다.
권수제 다음 행의 주해 정보는 “온릉개원련사비구 계환 해(溫陵開元蓮寺比丘 戒環 觧)”이다. 판심에는 작은 글자로 “법(法)”의 판심제와 함께 “사(四) 일(一)”의 권차 · 장차(張次)가 표기되어 있다.
권4 · 5 · 7의 권미제 다음에는 시주질(施主秩)이 각각 표기되어 있다. 권7의 시주질 다음 장에는 성달생(成達生)의 발문(跋文)이 찍혀 있으며, 발문 가운데는 “창녕성달생(昌寕成達生)”이라는 부분이 인출(印出) 과정에서 의도적으로 제외되어 있다. 그리고 성달생의 발문 다음에는 해당 목판의 간행 조직과 함께 간행 정보가 배열되어 있다.
법화사상(法華思想)을 담고 있는 『묘법연화경』은 천태종의 근본 경전으로, 『대방광불화엄경(大方廣佛華嚴經)』과 함께 우리나라에서 지속적으로 조성 · 유통된 대표적인 불교 기록유산이다. 『묘법연화경』은 고려시대와 조선시대에 걸쳐 최소 160여 종류가 조성 · 유통되었다.
백운사 소장의 『묘법연화경』은 구자국(龜玆國) 출신으로 후진(後秦)에서 활동한 구마라습이 한역(漢譯)한 『묘법연화경』을 송나라 임제종(臨濟宗)의 승려 지식인 계환이 주해 · 저술한 『묘법연화경요해(妙法蓮華經要解)』로, 1443년( 세종 25)경 전라도 고산(高山: 현, 전북특별자치도 완주군) 불명산의 화암사에서 개판(開板)한 목판을 1456년(세조 2) 음력 6월 이후 찍어 만든 인출본이다.
해당 목판은 성달생(成達生)이 쓴 판하본을 1443년(세종 25) 음력 5월경 화암사에서 개판하였으며, 조성 불사는 효령대군(孝寕大君) · 월산대군(月山大君) 등의 종실과 함께 관료 · 승려 등이 세종의 장수와 태종의 극락왕생을 기원하면서 발원(發願) · 시주(施主)하였다.
해당 목판의 판수(板首)는 대선사(大禪師) 사안(思安) 등이, 목판을 새긴 각수(刻手)는 선사(禪師) 신효(信孝) · 해남(海南) · 법징(法澄) · 신계(信戒) 및 대선사 달공(達空) · 자신(慈信) · 월암(月菴)이, 시주를 권유하는 권화(勧化)는 의명(義明) · 홍우(洪祐) · 의은(義誾) · 일봉(日峯) · 의호(義浩) · 성료(性了) · 상안(尙安)이, 대화주(大化主)는 혜신(恵信)이, 교정(校正)은 비구(比丘) 상은(尙誾)이 각각 분담하였다.
특히 해당 인출본은 발문 가운데 마지막 부분의 “창녕성달생”이라는 내용이 인출 과정에서 의도적으로 제외되어 있으므로, 성달생의 아들 성승(成勝)과 손자 성삼문(成三問)이 단종의 복위(復位) 정변(政變)을 주도하였다가 제거된 1456년( 세조 2) 음력 6월 이후 찍어 만들었다고 할 수 있다.
백운사 소장의 『묘법연화경』 4권 1책은 전체 7권 가운데 권4∼7의 영본이며, 표지 · 앞면 안에 변상도― 권수제― 주해 정보― 분과품 제목― 본문 내용― 권미제― 시주질 · 발문 · 간행 정보의 순서로 구성되어 있다. 변상도의 첫 부분에는 변상 제목과 함께 위태천(韋駄天)의 도상(圖像)이 위치하며, 이어 앞 · 뒷면에는 석가설법도(釋迦說法圖)가 배열되어 있다.
권4의 권미제 다음에는 선사해의(禅師海義) · 성린(性厸) 및 박천양주(朴天兩主) 등의 시주질이, 권5의 권미제 다음에는 선종대선사성환(禅宗大禅師省还) · 전용계사대덕신철(前龍雞寺大徳信哲) · 최중인(崔仲仁) · 한필(韓弼) 등 48명의 시주질이, 권7의 권미제 다음에는 밀양박씨일문(宻陽朴氏一門) · 임씨일문(任氏一門) 및 대선사신민(大禅師信敏) · 해연(海延) 등의 시주질이 각각 표기되어 있다.
그리고 권7의 시주질 다음 장부터는 “세재무신정모상거려기유춘도인해운내방청사능엄간재수전광행법시(嵗在戊申丁母䘮居廬己酉春道人海云来訪請㕐楞嚴刋梓壽傳廣行法施)…… 우청사연경(又請㕐蓮経)…… 주상전하만세(主上殿下壽萬嵗) 태종대왕증불지선망부모생정찰자(太宗大王證佛智先兦父母生淨刹者) 정통팔년계해오월일숭록대부판중추원사(正統八年癸亥五月日崇禄大夫判中樞院事) 근발(謹䟦)” 등과 같이 해당 목판의 판하본(板下本)을 쓴 시기 · 주체 · 경위와 함께 세종의 장수와 태종의 극락왕생을 기원하는 발문이 찍혀 있다.
발문 가운데는 “창녕성달생” 부분이 인출 과정에서 의도적으로 제외되어 있다. 이러한 성달생의 발문 다음에는 효령대군 · 월산대군 · 함녕군(諴寕君) 등의 종실, 경창부소윤이총(慶昌府少尹李惣) · 사정이맹인(司正李孟仁) · 녹사김유(禄司金裕) 등의 관료, 전백운사(前白雲寺) 신전(信田) · 설공(雪空) · 만행(万行) 등의 승려들과 함께 판수 · 각수 · 권화 · 대화주 · 교정의 간행 조직이 표기되어 있으며, “전라도고산지불명산화암사개판(全羅道高山地佛明山花岩寺開板)”이라는 간행정보로 마무리되어 있다.
아울러 효령대군 · 월산대군의 아래 빈 공간에는 연밥 형태와 유사한 문양이 양각되어 있기도 하다.
백운사 소장의 『묘법연화경』은 전체 7권 가운데 권1∼3이 빠져 있다. 그러면서 시주질 · 간행 조직 · 간행정 보가 비교적 풍부하게 남아 있으므로, 조선 세종 때 불교 기록유산의 서지학 연구에 중요한 자료적 가치를 가진다.
성달생의 글자 형태 및 정치적인 변화 과정과 함께 해당 목판의 조성 불사 당시 화암사의 출판 인쇄 실체 · 역량 및 조직체계를 비롯하여 불교 사상적 경향과 인적 연계망 등과 같은 역사 · 문화적인 실체를 진단할 수 있는 원천 자료이기도 하다.
부산광역시 해운대구 반송동 백운사에 소장되어 있으며, 국가유산의 가치를 인정받아 2013년 10월 23일 부산광역시 유형문화재(현, 유형문화유산)로 지정되었다.